항목 ID | GC07200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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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榮夏 |
영어공식명칭 | Yun Yeongha |
이칭/별칭 | 윤재하(尹在夏)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고은영 |
출생 시기/일시 | 1892년 7월 16일 - 윤영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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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2일 - 윤영하, 함양장터에서 만세운동에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69년 12월 8일 - 윤영하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5년 8월 15일 - 윤영하, 대통령표창 추서 |
출생지 |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 453 |
묘소 |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월암리 망월마을 뒷산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시장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독립운동가.
[가계]
윤영하(尹榮夏)는 1892년 7월 16일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에서 태어나 1969년 12월 8일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1919년 4월 2일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에 앞서 3월 28일 만세운동을 주동한 정순길(鄭淳吉)[1896~1962]·윤보현(尹普鉉)·정순귀(鄭淳貴)·노경식(盧璟植) 등 4명이 일본 헌병에게 체포된 사실에 분개한 김한익(金漢益)[1887~1933]이 다시 한 번 함양읍 장날 의거를 계획하였고, 윤영하는 하승현(河昇鉉)[1895~1919]과 함께 4월 2일 장터로 나가 시위 대열에 동참하였다.
시위 도중 긴급 출동한 일본 헌병에 의해 김한익이 체포되자 격노한 시위 군중과 함께 일본 헌병분견소(憲兵分遣所)로 달려가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애국지사 석방을 요구하다 분함을 이기지 못한 윤영하는 헌병분견소 정문으로 돌진하였고, 일본 헌병의 발포로 총상을 당하여 중상을 입었다.
[묘소]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월암리 망월마을 뒷산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2005년에 3·1운동의 공훈을 기려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