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8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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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昌鶴 |
영어공식명칭 | Lee Changha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고은영 |
출생 시기/일시 | 1859년 - 이창학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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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7년 12월 - 이창학, 아들 이봉두와 함께 항일 투쟁 전개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 이창학, 함양군 백전면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
몰년 시기/일시 | 1908년 8월 - 이창학, 항일 무장 투쟁 군자금 모집 중 피살 |
추모 시기/일시 | 2003년 8월 15일 - 이창학,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이창학 출생지 -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항촌[운산리 항촌]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의병활동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의 개항기 의병.
[가계]
이창학(李昌鶴)의 아들은 항일 투쟁 의병으로 활동한 이봉두(李鳳斗)[1884~1908]이다.
[활동 사항]
이창학은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항촌 출신이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으로 인해 해산 군인들이 대거 의병에 참여하여 무장 항일 투쟁이 전국으로 확산됐다. 경상남도 함양군의 지리산 일대에는 여러 의병부대가 항일 무장 투쟁을 하고 있었고, 이창학은 아들 이봉두와 함께 1907년 12월부터 항일 무장 의병 투쟁에 참여했다. 1908년 8월 백전면 항촌에 돌아와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아들 이봉두는 발각되어 그 자리에서 피살되었고, 이창학은 체포되어 수비대로 끌려 가다가 일본 경찰의 지시로 총살당해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3년 의병 항일 투쟁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