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7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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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五 |
영어공식명칭 | Hwang Oh |
이칭/별칭 | 녹차,녹차거사,한안,동해초이,녹일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동석 |
출생 시기/일시 | 1816년 7월 21일 - 황오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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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64년 - 황오, 낙향하여 창작 활동 전념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7년 12월 - 황오 묘지석 건립 |
출생지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공배리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장수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에서 활동한 문인.
[가계]
황오(黃五)[1816~?]의 자는 사언(四彦), 호는 녹차(綠此)·녹차거사(綠此居士)·한안(漢案)·동해초이(東海樵夷)·녹일(綠一)이다. 조선 후기인 1816년(순조 16)에 함양군 지곡면 공배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어머니는 영일정씨(迎日鄭氏)로, 정추희(鄭樞熙)의 딸이다.
[활동 사항]
황오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행적은 알 수 없다. 다만 황오가 저술한 『황녹차집(黃綠此集)』에서 “10대에 사서를 외우고 20대에 한양에 올라와 벼슬에 뜻을 두었으나 이루지 못하고 30대에 명산대천을 유람하고 40대에 집으로 돌아왔다.”라는 내용으로 보아 대략의 행적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황오는 뛰어난 문장력으로 인해 김정희(金正喜)[1786~1856], 조두순(趙斗淳)[1796~1870], 김병연(金炳淵)[1807~1863], 김병학(金炳學)[1821~1879], 신석우(申錫愚)[1805~1865], 박규수(朴珪壽)[1807~1877], 조재응(趙在應)[1803~?] 등 당대 사대부들과 많은 교분을 쌓을 수 있었다.
『함양군지』(함양군지편찬위원회, 1997)에 따르면 황오는 유호인(兪好仁)[1445~1494]·표연말(表沿沫)[1449~1498]·이후백(李後白)[1520~1578]과 더불어 함양의 4대 문장가로 기록되어 있으며, 시문과 필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학문과 저술]
1932년에 이종소(李鍾韶), 강신용(姜信鏞) 등이 편집·간행한 『황녹차집(黃綠此集)』이라는 시문집이 있다. 2권 1책으로 된 연활자본이다. 권두에는 최영년(崔永年)[1859~1935]의 서문과 권말에는 강신용의 발문이 있다. 함양 지역을 소재로 하여 쓴 시도 한편 수록되어 있다. 대표 시로 「야회(夜會)」, 「유소사(有所思)」, 「해당루소작(海棠樓小酌)」 등이 있다.
[묘소]
2017년 12월에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에서 ‘백화산을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단체가 황오의 묘지를 발견하고 묘지석을 설치하였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에 황오 시비가 세워져 있고, 2017년 12월 14일에 열린 제1회 옥동서원 학술대회에서 「녹차 황오의 문학 연구」가 발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