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7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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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士霖 |
영어공식명칭 | Baek Sarim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동석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활동한 무장.
[가계]
백사림의 본관은 해미(海美)이다. 백사림의 형은 무장 백광언(白光彦)[1554~1592]이다.
[활동 사항]
백사림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군대에 들어가 장수가 되었다. 그 뒤 김해부사에 임명되었으며, 1594년에는 거제도의 왜군을 협공하는 데 참여하여 조방장 곽재우(郭再祐)[1552~1617], 도원수 권율(權慄)[1537~1599], 통제사 이순신(李舜臣)[1545~1598] 등과 함께 싸웠다. 이후에도 웅천(熊川)·가덕(加德)을 수비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왜란 중에 일본과의 교섭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김해부사로 황석산성의 장수가 되어 1597년 함양의 황석산성(黃石山城)을 수비하던 중 도망한 죄로 투옥되어 심문을 받고 1599년 고향으로 퇴거하였다.
[관련 기록]
『선조실록(宣祖實錄)』 96권 선조 31년 1월 7일 계사 세 번째 기사에 “전 김해부사 백사림은 황석산성이 함락되던 날 끝까지 사수(死守)하지 못하고 적에게 붙은 아전과 백성들에게 유인 당해 성을 넘어 몰래 도망쳐 자기 집안은 보전하였으나 온 성의 사람들을 어육(魚肉)이 되게 하였으므로 듣는 사람들이 분통스럽게 여기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백의종군(白衣從軍)으로는 그의 죄를 징계하기에 부족하니 잡아다 국문하여 죄를 정하여 군율(軍律)을 중하게 하소서.”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곽준[1551~1597]의 동생 곽근(郭赾)이 올린 상소로, 황석산성의 함락을 자초한 백사림이 큰 벌을 받아야 함에도 비호 세력이 있어 큰 벌을 받지 않고 살아남은 것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