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7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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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潤壽 |
영어공식명칭 | Park Yunsu |
이칭/별칭 | 영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신은제 |
출생지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월림리 성북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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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무관|의원 |
성별 | 남 |
본관 | 밀양 |
대표 관직 | 옥천찰방|의령원수봉관|의략장군|용양위부사과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월림리 성북마을 출신의 무관이자 의원.
[가계]
박윤수(朴潤壽)는 지족당(知足堂) 박명부(朴明榑)[1571~1639]의 후손으로, 부친은 박지식이다. 조상인 박명부의 세거지가 경상도 안의현 광풍리(光風里)인 점을 고려하면 박윤수의 출생지 역시 현재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월림리 성북마을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박윤수의 호는 영송(嶺松),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활동 사항]
박윤수는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판서 박기양(朴箕陽)[1856~1932]으로부터 “용대춘풍 기엄추상(容帶春風 氣嚴秋霜)[용모는 봄바람 같고 기상은 가을 서리보다 엄하다]”는 평을 들었다. 박윤수는 의술로 이름이 높아 주로 호남 지방의 광주에서 활동하였으며, ‘일심(一心)’이라는 의원을 광주에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에 “의명호남상일 재화불영심(醫名湖南上一 財貨不營心)[이름난 의술은 호남 제일이요, 재물에는 욕심이 없다]”는 평을 들었다. 함양 여익현(呂翼鉉)이 비석에 새긴 글이 있으며, 『대동충의록(大東忠義錄)』에 박윤수의 사적(事績)[일의 실적이나 공적]이 기록되어 있다. 박윤수의 자손이 경상남도 함양의 성 북쪽에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