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7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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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允仝 |
영어공식명칭 | Seong Yundong |
이칭/별칭 | 공신,척암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신은제 |
출생 시기/일시 | 1450년 - 성윤동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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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68년 - 성윤동, 무과에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540년 - 성윤동 사망 |
출생지 | 성윤동 출생지 -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
거주|이주지 | 성윤동 거주지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
부임|활동지 | 성윤동 활동지 - 평안북도 위원군 |
부임|활동지 | 수승대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창녕 |
대표 관직 | 위원군수[평안북도]|병마절도사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창녕이다. 증조는 장사랑(將仕郞) 성휘(成彙), 조부는 성서(成敍), 부친은 성이건(成以乾)이다. 형으로는 성순동(成順仝)과 성우동(成友仝)이 있다. 자는 공신(公信), 호는 척암(滌庵)이다.
[활동 사항]
1468년(세조 13) 무과에 급제한 뒤 위원군수(渭原郡守)에 임명되었고, 관직은 병마절도사에 이르렀다. 성종 대에는 통정대부로 북병사에 임명되었으며, 북병사로 재직할 당시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활을 잘 쏘아 명나라 황제로부터 용의 비늘처럼 만든 갑옷 등을 하사받았다.
1510년(중종 5) 의주 목사(義州牧使) 구전(具銓)이 변방의 장수를 마음대로 처형한 일에 연루되어 의금부에 하옥되기도 하였다.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현[안의면]으로 낙향한 것으로 보이는데 정확한 연대는 확인할 수 없다. 안의향안(安義鄕案)에 성윤동의 이름이 기재된 것으로 보아 낙향한 뒤 안의에 거주하면서 지역 양반으로 역할한 것으로 보인다. 안의현에 낙향한 이후 ‘수승대(搜勝臺)’를 개척하여 인근 양반들과 교유하였다.
[학문과 저술]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교북리에 위치한 안의향교에서 과거에 활동한 주요 역사 인물들을 수록한 『안의향안』에 기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