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7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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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以乾 |
영어공식명칭 | Seong Yigeon |
이칭/별칭 | 건수,백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신은제 |
활동 시기/일시 | 1458년 - 성이건, 변방의 진장과 군사 수가 감소한 것을 이유로 한명회에게 탄핵 받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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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467년 - 성이건 사망 |
거주|이주지 |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
부임|활동지 | 영해부사 - 경상북도 영덕군 |
묘소|단소 |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창녕 |
대표 관직 | 영해부사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출신의 무신.
[가계]
증조는 낭장 성석번(成石璠), 조부는 장사랑(將仕郞) 성휘(成彙), 부친은 성서(成敍)이다. 아들은 성순동, 성우동, 성윤동이다. 자는 건수(健叟), 호는 백촌(栢村)이다.
[활동 사항]
성이건은 세종 통치 기간에 무과 급제를 하였다. 세조를 도와 계유정란에 참여하여 원종공신에 책봉되었다. 영해부사(寧海府使)에 임명되었으나 1458년(세조 4) 변방의 진장(鎭將)[조선시대에 각 도의 군사 요충지에 설치한 진영의 우두머리 장수]과 군사 수가 감소한 것을 이유로 한명회(韓明澮)[1415~1487]로부터 탄핵을 받았다. 이후 고신(告身)[조정에서 내리는 벼슬아치 임명장]을 돌려받고 변방에서 군관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이시애(李施愛)[?~1467]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시애의 난에 맞서다 처형 당하였다. 『창녕성씨문행열전』에 따르면 이시애가 투항을 권유하였으나 “신하된 자로서 나라를 위하여 순절(殉節)[충절이나 정절을 위하여 죽음]하여야지 어찌 너희 무리에게 굴복하겠느냐”며 거절하여 이시애에게 처형 당하였다. 성이건의 시신은 충직한 성이건의 종이 수습하여 경상남도 함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묘소]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