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759 |
---|---|
한자 | 宋千喜 |
영어공식명칭 | Song Cheonhee |
이칭/별칭 | 구부,이허정,문절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최정용 |
출생 시기/일시 | 1443년 - 송천희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489년 - 송천희, 식년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495년 - 송천희, 병조좌랑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497년 - 송천희, 예문관검열·사간원헌납·병조참지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506년 - 송천희, 공조참의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512년 - 송천희, 하성절사로 명나라 사신 수행 |
활동 시기/일시 | 1515년 - 송천희, 대사헌 역임 |
몰년 시기/일시 | 1520년 - 송천희 사망 |
거주|이주지 | 송천희 거주지 -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
외가|처가 | 송천희 처가 -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
묘소|단소 | 송천희 묘소 -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
묘소|단소 | 송천희 묘소 - 광주광역시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여산 |
대표 관직 | 경상도관찰사|우윤|형조참판|개성부유수|대사헌|지중추부사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에서 거주한 문신.
[가계]
송천희(宋千喜)[?~1520]의 자는 구부(懼夫), 호는 이허정(二虛亭)이다.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송천희의 시조는 송유익(宋惟翊)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송순(宋珣)이고, 송충손(宋忠孫)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도승지에 추증된 송윤(宋倫)이고, 아버지는 문과급제하여 형조좌랑 충청도사 등을 역임하고 예조판서에 증직된 송극창(宋克昌)[1431~1476]이다. 어머니는 나주정씨(羅州鄭氏)로, 화순현감을 지낸 정극종(鄭克從)의 딸이다. 송천희의 부인은 경상남도 함양군 백자동(栢子洞)[지금의 함양군 백전(栢田)면 일대]에 거주하고 있던 윤원동(尹元仝)의 딸로, 송천희도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으로 옮겨와 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송천희는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 아우 송백희(宋百喜)의 아들 송균(宋均)을 입계(入系)[양자로 받아들여서 그 집의 대를 이음]하였다.
[활동 사항]
송천희는 1489년(성종 20)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491년(성종 22) 한림·주서를 거쳐 1495년(연산군 1)에 병조좌랑을 지냈다. 그러나 왕의 친행시 예의에 벗어난 일을 하였다 하여 파직당하였다. 1497년(연산군 3)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이 된 뒤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 병조참지를 거쳐 1506년(중종 1)에 공조참의를 지냈다. 이후 황해도관찰사, 동부승지, 부제학, 경상도관찰사, 우윤, 형조참판을 역임하였다.
경상도 관찰사 재직 시 흉년에 힘을 다하여 백성을 구제하여서 백성이 떠돌거나 굶어 죽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다. 또 당시 불제자를 자칭하는 경상남도 함양의 여무(女巫)[무녀]가 있었는데 영험하다는 소문으로 많은 사람이 여무에게 쌀과 옷감을 바친다는 것을 알게 된 송천희가 여무 및 무리 수십인을 장살(杖殺)[매를 쳐서 죽이는 형벌]하여 풍속(風俗)을 단속하였다. 1512년(중종 7)에 하성절사(賀聖節使)[조선 시대에 중국의 황제, 황후, 황태자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보내던 사신]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개성부유수를 거쳐 1515년(중종 10)에 대사헌이 되었다. 1519년(중종 14)에 신진유사(新進儒士)들에 의하여 배척받은 뒤 지중추부사로 지내다가 1520년(중종 15) 1월 18일 사망하였다. 송천희는 만년에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으로 이거하여 행화대(杏花臺)를 만들고 소요자적(逍遙自適)[아무런 속박도 받지 않은 채 한가롭게 거닐고 돌아다님]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묘소]
송천희는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마을 뒤 계좌원(癸坐原)에 장사하였다.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향 옥계마을 뒤 산기슭에 있는 영사재(永思齋)는 송천희와 부인 윤씨의 묘실이다. 후손들이 경상남도 함양군에 살지 않고 광주광역시(光州廣域市)에 거주하고 있으므로 거리가 멀어 자주 성묘를 오지 못하다가 나중에 송천희의 무덤을 광주광역시로 이장(移葬)하였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