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7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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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希孟 |
영어공식명칭 | Gang Huimaeng |
이칭/별칭 | 경순,사숙재,운송거사,국오,만송강,문량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장혜금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 머물면서 활발하게 활동한 문신이자 화가.
[개설]
1447년(세종 29) 문과 급제 후 세조 때 예조판서와 형조판서를 지내고, 예종 대에 익대공신(翊戴功臣)이 되었다. 성종 대에는 병조판서를 거쳐 이조판서·우찬성·좌찬성 등을 지냈다. 강희맹은 당대 최고 문장가이면서 그림에도 뛰어나 도화서(圖畵署) 제조(提調)를 역임하였다.
[가계]
강희맹(姜希孟)[1424~1483]의 자는 경순(景醇), 호는 사숙재(私淑齋)·운송거사(雲松居士)·국오(菊塢)·만송강(萬松岡)이다.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청성군 강시(姜蓍)[1339~1400], 할아버지는 동북면순무사(東北面巡撫使) 강회백(姜淮伯)[1357~1402], 아버지는 지돈녕부사 강석덕(姜碩德)[1395~1459]이다. 어머니는 영의정 심온(沈溫)[1375~1418]의 딸이자 세종의 비 소헌왕후(昭憲王后)[1395~1446]의 여동생으로, 세종이 강희맹의 이모부가 된다. 시서화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絶)로 불린 강희안(姜希顔)[1417~1464]이 형이다. 작은 아버지 강순덕과 이씨 부부의 양자가 되었으며, 양어머니 이씨가 강희맹에게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농장 등을 물려주어 함양과 인연이 닿았다.
[활동 사항]
강희맹은 작은 아버지이자 양부인 강순덕 상을 당하여 51세 경부터 2~3년 동안 경상남도 함양군에 머물렀으며, 이 시기에 활발하게 시작(詩作) 활동을 하였다. 당시 함양군수로 와 있던 김종직(金宗直)[1431~1492]과 두터운 친분을 쌓으며 시를 나누었고, 농장 함양촌사(咸陽村舍)에 머무르면서 주변 풍경 및 생활을 글과 그림으로 담아내었다. 강희맹이 함양 관아의 상량문을 쓴 것도 이 시기로 추측된다.
[학문과 저술]
세조 때 『신찬국조보감』과 『경국대전』을 비롯하여 성종 때 『동문선』, 『동국여지승람』, 『국조오례의』, 『국조오례서례』 등의 편찬에 핵심 역할을 하였다. 강회백, 강석덕, 강희안 등 3대에 걸친 문집 『진산세고(晉山世稿)』를 간행한 강희맹은 1473년 당시 함양군수 김종직에게 부탁하여 함양에서 개판하였다고 한다.
[묘소]
경기도 시흥시 하상동 산2번지[하상로 59]에 있으며, 경기도 기념물 제87호로 지정되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량(文良)이다. 강희맹 묘소 아래 1488년에 신숙주(申叔舟)[1417~1475]가 지은 신도비문(神道碑文)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