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7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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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盧叔仝 |
영어공식명칭 | No Sukdong |
이칭/별칭 | 화중,송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장혜금 |
출생 시기/일시 | 1430년 3월 - 노숙동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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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27년 - 노숙동, 친시 문과의 을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박사·교리와 사헌부감찰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436년 - 노숙동, 문과 중시에 급제한 후 전라도도사와 집현전 교리·응교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448년 - 노숙동, 지사간원사로 승진 |
활동 시기/일시 | 1449년 - 노숙동, 지통례첨사에 체직 |
활동 시기/일시 | 1450년 - 노숙동, 세자시강원좌필선·예문관직제학과 집현전직제학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451년 - 노숙동, 당상관으로 승진하면서 호분위상장군 겸 지병조사춘추관편수관을 거쳐 동부승지로 선임 |
활동 시기/일시 | 1452년 - 노숙동, 좌부승지·우승지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453년 - 노숙동, 호조참판에 승진하면서 보문각제학·동지경연사 겸임 |
활동 시기/일시 | 1455년 - 노숙동, 예문관제학·동지경연사에 이어 대사헌·세자좌부빈객 겸임 |
활동 시기/일시 | 1456년 - 노숙동, 형조참판에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57년 - 노숙동, 예조참판·동지춘추관사·예문관제학·강원도관찰사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458년 - 노숙동, 호조참판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462년 - 노숙동, 사은사로 명나라 파견 후 상호군으로 활동 |
몰년 시기/일시 | 1463년 7월 7일 - 노숙동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701년 - 노숙동, 도곡서원에 배향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455년 - 노숙동, 좌익원종공신2등에 책록됨 |
출생지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화목마을 |
거주|이주지 | 함양 풍천노씨대종가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길 44-11[개평리 264번지] |
외가|처가 | 노숙동 처가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길 59[개평리 230-3번지] |
부임|활동지 | 전라도 관찰사 - 전라도 |
부임|활동지 | 강원도 관찰사 - 강원도 |
부임|활동지 | 경상도 관찰사 - 경상도 |
부임|활동지 | 판진주목사 - 진주목 |
부임|활동지 | 사은사 - 명나라 |
묘소|단소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공배리 부야마을 |
사당|배향지 | 도곡서원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병곡지곡로 859[평촌리 72]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풍천 |
대표 관직 | 사헌부감찰|전라도도사|예문관직제학|우승지|대사헌|형조참판|동지중추원사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에 터를 잡은 풍천노씨 입향조이자 문신.
[가계]
노숙동(盧叔仝)[1430~1463]의 자는 화중(和仲), 호는 송재(松齋)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1430년 3월 임인일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확목리 화목마을에서 3남 3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승사랑(承仕郞) 용구현령(龍駒縣令) 노천계(盧天桂)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조참의(吏曹參議) 노흥길(盧興吉)이다. 아버지는 증병조참판 노언(盧焉)이고, 어머니는 군기시소윤 김양귀(金良貴)의 딸이다. 정부인 김씨는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 할아버지 정복주(鄭復周)[1367~?]의 딸 하동정씨(河東鄭氏)와 생원 김점(金點) 사이에서 났으며 세자시강원 우유선(右諭善) 김성용(金成用)의 손녀이다. 노숙동과 김씨는 혼인한 뒤 경상남도 함양에 정착하여서 아들 노균과 노분(盧昐)[1437~1478] 외 두 딸을 두었다. 신고당 노우명(盧友明)[1471~1523]은 노분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노숙동은 조선 세종부터 세조 때까지 활동한 문신이다. 1427년 문과의 을과에 급제한 후 사헌부감찰, 전라도도사, 예문관직제학, 우승지, 대사헌, 형조참판, 동지중추원사 등 요직을 역임하였다. 1462년 사은사(謝恩使)로 명(明)에 파견되었으며, 상호군(上護軍) 활동도 했다. 노숙동은 여러 관직을 넘나들었으나 청백리로 녹훈(錄勳)될 정도로 청렴한 관리로 전하여 온다.
풍천노씨 중시조이자 경상남도 함양군 입향조이다. 노숙동이 혼인하고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에 자리를 잡게 된 사연이 있다. 과거에 급제한 노숙동이 지나가는 길에 개평마을 근처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때 김점이 꿈에 승천하는 용을 보고 일어나 범상치 않은 꿈이라고 여겨서 주변을 살피다가 노숙동을 발견하였다. 노숙동을 데리고 와 대접하고 나중에 사위로 삼게 되었다. 노숙동이 개평마을로 들어오면서 지은 집인 풍천노씨 대종가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43호로 지정되어 있다.
[학문과 저술]
『자치통감훈의(資治通鑑訓義)』와 『치평요람(治平要覽』 편찬에 참여하였고, 『고려사(高麗史)』의 기(紀)·지(志)·연표 집필에 참여하였다.
[묘소]
[상훈과 추모]
1455년(세조 원년) 좌익원종2등공신으로 책록되었고, 세조 대에 청백리로 녹선되었다. 1701년(숙종 27)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병곡리에 있는 도곡서원(道谷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