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7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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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汝昌一蠹文木版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필봉산길 55구[교산리 104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공광성 |
제작 시기/일시 | 1635년 - 정여창 일두문집 목판, 정수민이 초간본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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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시기/일시 | 1743년 - 정여창 일두문집 목판, 도암 이재가 유집 3권으로 발행 |
제작 시기/일시 | 1920년 - 정여창 일두문집 목판, 정환주가 속집 간행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2년 12월 29일 - 정여창 일두문집 목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66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정여창 일두문집 목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 |
현 소장처 | 함양박물관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필봉산길 55구[교산리 1044] |
원소재지 | 남계서원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남계서원길 8-11[원평리 586-1] |
성격 | 책판 |
재질 | 나무 |
크기(높이,길이,너비) | 65.6x23.5x3.3㎝ |
소유자 | 남계서원 |
관리자 | 함양군수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있는 남계서원에서 일두 정여창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목판.
[개설]
이 책판은 모두 369매로,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것이다. 그의 문집은 정구와 정여창의 증손자 정수민(鄭秀民)이 함께 유문을 수습하고, 편집하여 1635년(인조 13) 처음 발행하였다. 이어 1743년(영조 19)에 도암(陶菴) 이재(李縡)가 초간본에 누락된 것을 보완하고 편집하여 유집(遺集) 3권으로 발행하였다. 그 후 1920년에 남계서원에서 다시 정여창의 시문과 사우록(師友錄) 그리고 정여창의 후손 정환주(鄭煥周)가 수집한 것을 모아 부록을 더하여 속집 4권 1책으로 발간하였다.
[형태]
문집은 중간본, 추록(追錄) , 유집(遺集), 속집(續集) 등 다양하게 간행되어 남아 있는 책판은 만들어진 시기와 크기 등이 각각 다르다. 『문헌공실기』의 책판은 가로, 세로, 두께가 65.6x23.5x3.3㎝이며, 23장만 남아 있다. 중간본 책판은 전체 35장 가운데 33장이 남아 있고, 크기는 59.5x22.6x2.4㎝이다. 추록의 책판 크기는 59.5x22.6x2.4㎝이며, 전체 7장이다. 1779년·1864년·1908년에 인간(印刊)되었으며, 중간 이후 저자의 시문과 관련된 글을 모아 추록의 형태로 중간본의 장차(張次)에 이어서 간행한 것이다. 속집의 책판 크기는 56.8x24.6x3.1㎝이며, 53장이 남아 있다. 유집은 편차가 각기 다른 두 종류가 있는데, 36장과 23장의 완질본이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책판은 함양군의 남계서원에서 판각된 것으로 서원 판본 연구 자료이다. 또한 오랜 시기를 거쳐 추가, 수정, 보완되어 온 책판으로, 책판과 간행본을 아울러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1972년 12월 29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66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