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706 |
---|---|
한자 | 南原梁氏龍城世稿木板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공배음촌길 46-1[공배리 52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공광성 |
제작 시기/일시 | 1786년 - 남원양씨 용성세고 목판 조성 |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7년 1월 30일 - 남원양씨 용성세고 목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34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남원양씨 용성세고 목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 |
현 소장처 | 남원양씨 문중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공배음촌길 46-1[공배리 525] |
성격 | 책판 |
재질 | 목재 |
크기(높이,길이,너비) | 53.7x31.0㎝ |
소유자 | 남원양씨 함양 종중 |
관리자 | 양기원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공배리에서 세거하고 있는 남원양씨 인물 7인의 시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목판.
[개설]
『용성세고』에 수록된 7인은 양천지(梁川至)[1396~1447]를 비롯한 그 자손들이다. 양천지의 자는 장원(長源)이고 호는 성곡(省谷)으로,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그의 아들 양관(梁灌)[1437~1507]의 자는 옥지(沃之)이고 호는 일로당(逸老堂)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의주목사 등을 지냈으며, 청백리로 녹훈되었다. 양관의 아들인 양응곤(梁應鯤)[1475~524]의 자는 태충(太冲)이고 호는 삼사당(三斯堂)으로, 음서로 천거되어 사도사 첨정(司導寺僉正)을 지냈으며, 호조 참판에 증직되었다. 양응곤의 아들인 양희(梁喜)[1515~1580]의 자는 구이(懼而)이고 호는 구졸암(九拙菴)으로, 정인홍의 사위로 이조참판을 지냈다. 양희의 장남인 양홍주(梁泓澍)[1550~1610]의 자는 대림(大霖)이고 호는 서계기옹(西溪棄翁)으로 의금부 도사를 지냈다. 양희의 차남 양홍부(梁泓溥)[1554~1602]의 자는 중원(仲源)이다. 양홍주의 아들인 양황(梁榥)[1575~1597]의 자는 학기(學器)이고 호는 진우재(眞愚齋)이다.
[형태]
목판은 모두 70판으로 완본이며, 문집 간행 당시 판각된 수작(秀作)의 능화문판(菱花紋板) 1장이 남아 있다. 『용성세고』는 부록을 포함하여 2권 2책으로 되어 있는데, 편찬과 간행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그 경위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 권두에 윤광소(尹光紹)의 서문이 있고, 권1에는 양천지·양관·양응곤·양희의 문집이, 권2에는 양홍수·양부·양황의 문집 그리고 부록에는 류성룡·이이·송시열 등의 비문이 실려 있다. 책판의 크기는 53.7x31.0㎝이다. 책판은 사주단변(四周單邊)으로, 반곽(半郭)의 크기는 19.3x15.2㎝이다. 계선(界線)이 있으며, 10행 20자로 주는 쌍행(雙行)이다. 어미는 상하향백어미(上下向百魚尾)이다.
[특징]
목판의 판심에는 권차(卷次)가 표기되어 있지 않으며, 문집만 건·곤 양권으로 제본되어 있다. 서문의 3쪽 판은 반엽의 좌측면만 판심을 포함하여 중앙에 판각되어 있으며, 마구리 한쪽 또는 양쪽이 유실된 판이 8장 있다.
[의의와 평가]
문집과 그 책판이 함께 남아 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남원양씨 용성세고 목판을 통해 당시 경상남도 함양군 명문 가문의 출판문화를 엿볼 수 있다. 1997년 1월 30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34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