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7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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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翼介庵文集木版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필봉산길 55[교산리 104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공광성 |
제작 시기/일시 | 1686년 - 강익 개암문집 목판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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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72년 12월 29일 - 강익 개암문집 목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67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강익 개암문집 목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 |
현 소장처 | 함양박물관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필봉산길 55[교산리 1044] |
원소재지 | 함양 남계서원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남계서원길 8-11[원평리 586-1] |
성격 | 책판 |
재질 | 나무 |
크기(높이,길이,너비) | 53.9x22.0x2.1㎝ |
소유자 | 남계서원 |
관리자 | 남계서원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남계서원에서 개암 강익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조선 후기 목판.
[개설]
강익(姜翼)[1523~1567]의 자는 중보(仲輔)이고, 호는 개암·송암(松菴)이며, 본관은 진주이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인이다. 1549년(명종 4)에 진사 급제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평생 학문과 후진 양성을 위해 노력하였다. 1552년(명종 7) 정여창을 봉향한 남계서원의 건립을 주도하였으며, 1566년(명종 21)에 남계서원의 사액을 위해 상소를 올릴 때 소두(疏頭)가 되었다. 사후 남계서원에 봉향되었다.
[책판 내용]
강익의 문집을 널리 간행하기 위해 만든 책판으로, 총 수량은 186매이다. 책판은 상하 1책으로 되어 있는데, 권두에 1706년(숙종 32)에 정기윤(鄭岐胤)이 쓴 서문과 목록이 있고, 상권에는 시(詩)·서(書)·기(記)·추록(追錄)이 있다. 하권에는 세계·연보·행장·묘표(墓表)·만장(挽章)·제문(祭文) 등이 수록되어 있고, 권말에 정광연(鄭光淵)과 양천익(梁天翼)의 발문이 있다.
개간(開刊)은 “숭정갑신후 병인중추일 함양 남계서원 개간(崇楨甲申後丙寅仲秋日咸陽藍溪書院開刊)”이라는 간행 기록을 통해 1686년(숙종 12)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후 1700년과 1846년 등에 추각(追刻)된 판과 1938년에 중간(重刊)된 판도 포함되어 있다.
[형태]
책판의 가로, 세로, 두께의 길이는 53.9x22.0x2.1㎝이며, 사주단변(四周單邊)으로 반곽(半郭)은 21.1x17.2㎝이다. 계선(界線)이 있으며, 10행 20자로 주는 쌍행(雙行)이다. 어미는 내향이엽화문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마구리가 있으며, 가로, 세로, 두께의 길이는 3.0x26.4x4.8㎝이다.
[특징]
현존하는 책판은 추각 과정에서 책판 전체를 새로 제작한 것이 아니라 기존 초간본의 여백에 내용을 추가하거나, 몇 장의 책판만 새로 제작하여 기존의 책판에 삽입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이 추록 부분에 강익이 지은 시조 3수가 새겨져 있다.
[의의와 평가]
개암 강익의 문집 책판을 통해 그가 당시 지역 학자들과 사회에 끼친 영향력이 대단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문집이 개간된 이후 후쇄본, 중간본의 간행 과정에서 그의 영향력이 오랫동안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책판은 1972년 12월 29일 가치를 인정받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67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