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661 |
---|---|
한자 | 弘窩實記 |
영어공식명칭 | Hongwasilgi |
이칭/별칭 | 『홍와선생실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공광성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출신 유학자 노사예의 실기.
[저자]
노사예(盧士豫)[1538~1594]의 자는 입부(立夫), 호는 홍와(弘窩),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신고당(信古堂) 노우명(盧友明)[1471~1523], 작은아버지는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이다. 1552년에 함양의 남계서원이 창건되고 외종사촌인 개암(介庵) 강익(姜翼)[1523~1567]이 원장으로 추대되었으며, 강익은 노사예를 추천하여 상유사(上有司)로 삼았다. 이후 남계서원의 대소사에 관여하였으며 30세에 남계서원 원장으로 부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으며, 그 공로로 정려가 내려졌다. 1824년 도곡서원(道谷書院)에 향사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10대손 노동현(盧東鉉)·노기현(盧冀鉉) 등이 유문을 수습하여 편집, 간행하였다. 이들의 발문에는 작성 연대가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1885년에 작성된 실기(實記) 원본의 산삭(刪削)[필요없는 글자나 구절을 지움]된 부분을 보고 40여 년이 지나 수정하여 간행한다고 한 점과 오진영(吳震泳)[1868~1944]의 발문이 1922년에 작성된 것을 본다면 1922년 이후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형태/서지]
2권 1책의 목활자본이며, 전체 크기는 30.2x20.2㎝이다. 사주쌍변(四周雙邊)이다. 반곽(半郭)은 20.0x15.5㎝이며, 행마다 경계가 있다. 10행 20자이고, 주(註)는 쌍행(雙行)이며, 내향이엽화문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홍와실기』는 총 2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두에는 정석(鄭氵+奭) ·정환주(鄭煥周)의 서문이 있다. 권말에는 노기수(盧箕壽)·오진영 및 10대손인 노동현·노기현 등의 발문 4편이 있다. 권1에는 시, 서(書), 명(銘), 잠(箴), 서(序), 제문(祭文), 행장, 잡저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2는 부록으로 「세계원류(世系源流)」, 「연보」, 「가학도」, 가장(家狀), 행장 및 행록(行錄), 통문(通文), 고유문(告由文), 상량문, 축문(祝文)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홍와실기』는 노사예 사후 삼백여 년이 지나 간행된 것으로, 여러 글이 흩어 없어지게 되어 전해지지 못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조선 시대 경상우도 지역은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의 영향으로 문인 대부분이 시문 창작을 즐기지 않아 문집의 분량이 소략하다는 점을 비춰 본다면 『홍와실기』 내용은 노사예의 학문이나 당시 경상우도 지역 또는 함양 지역 사회상을 살펴볼 수 있는 요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