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6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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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風皐遺稿 |
영어공식명칭 | Punggoyug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현진 |
[정의]
조선 전기에서 후기에 걸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노주의 문집.
[저자]
노주(盧冑)[1557~1617]의 자는 경승(景承), 호는 풍고(風皐)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아버지는 형조참판에 추증된 노사준(盧士俊)이다. 어머니는 나주임씨(羅州林氏)로, 임각(林珏)의 딸이다. 작은할아버지 노진(盧禛)[1518~1578]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1588년(선조 21)에 유일(遺逸)[초야에서 은거하고 있는 선비를 찾아 천거하는 인재 등용책]로 제릉참봉(齊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 창의(倡義)하여 최변(崔汴)의 선봉에서 전공을 세웠고, 홍주(洪州)로 가서 체찰사 정철(鄭澈)[1536~1593]을 설득하기도 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1922년 6월 노득현(盧得鉉)과 노종한(盧鐘漢)이 『풍천노씨세고(豊川盧氏世稿)』를 중간할 때 함께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풍고유고(風皐遺稿)』는 『풍천노씨세고』 11권 5책 가운데 권6의 일부이다. 사주쌍변이고, 반곽은 21.4×15.9㎝이다. 경계가 있으며, 10행 21자이다. 주는 쌍행이며, 상하이엽화문어미이다.
[구성/내용]
『풍고유고』에는 하혼(河渾)[1548~1620]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고, 임진왜란 때의 「거의격서(擧義檄書)」와 「창의통문(倡義通文)」이 있다. 운고(雲皐) 제문, 홍재(弘齋) 노사예(盧士豫)[1538~1594]의 가장(家狀)[한 집안 어른의 평생 동안 행적을 기록한 글], 추담(秋潭) 노사개(盧士㑘)의 가장, 우계(迂溪) 노사상(盧士尙)[1559~1598]의 가장, 습열당(習悅堂) 노사회(盧士誨)의 가장이 실려 있다. 이 외는 부록이다. 배세겸(裵世謙)[1540~1632]의 정문(呈文)[하급 관아에서 동일한 계통의 상급 관아로 올리는 공문], 하혼의 답장, 노흠(盧欽)[1527~1602]의 답장, 박문영(朴文楧)의 만장(挽章)[죽은 이를 슬퍼하여 지은 글], 이이장(李彝章)이 지은 묘갈명이 실려 있다. 또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운 노주에 대하여 정표(旌表)[착한 행실을 칭송하고 이를 세상에 드러내어 널리 알림]를 청하는 「정영장(呈營狀)」과 「정수의장(呈繡衣狀)」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유학자 노주의 시문집인 『풍고유고』는 경상남도 함양 지역 풍천노씨 가문의 인물 정보 및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