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6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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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湖先生文集 |
영어공식명칭 | Ryonghoseonsaengmunjip |
이칭/별칭 | 『용호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현진 |
간행 시기/일시 | 1910년 - 『용호선생문집』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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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경상대학교 도서관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대로 501[가좌동 900] |
성격 | 문집 |
저자 | 박문영 |
편자 | 박경기|박찬은|박명순|박덕우 |
간행자 | 박경기|박찬은|박명순|박덕우 |
권책 | 4권 2책 |
행자 | 10행 20자 |
규격 | 21.5×32.4㎝ |
어미 | 상이엽화문어미 |
권수제 | 용호선생문집목록 |
판심제 | 용호선생문집 |
[정의]
조선 시대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박문영의 문집.
[저자]
박문영(朴文楧)[1570~1623]의 자는 군수(君秀), 호는 용호(龍湖)이다.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아버지는 형조참판에 추증된 박행(朴荇)이다. 어머니는 풍천노씨(豊川盧氏)로, 노사상(盧士祥)의 딸이다. 경상도 산음현 효촌(曉村)[지금의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에서 태어났고,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에 거주하였다. 외종숙(外從叔) 추담(秋潭) 노사성(盧士誡)에게 수학하였고, 이후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오장(吳長)[1565~1617], 권도(權濤)[1575~1644], 권집(權潗) 등과 교유하였다. 임진왜란 때 창의(倡義)하였고, 1606년(선조 39)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만년에 산청의 경호강 기슭 용호(龍湖)에 정자를 짓고 은거하였으며, 서계서원(西溪書院)에 배향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1862년(철종 31) 2월에 9세손 박경기(朴慶基)가 2권 2책의 목활자본으로 초간본을 간행하였다. 이후 1910년 9월에 후손 박찬은(朴贊殷)이 족숙(族叔) 박명순(朴明淳)과 재종질(再從姪)[육촌 형제의 아들] 박덕우(朴德雨)와 함께 4권 2책의 중간본을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용호선생문집(龍湖先生文集)』은 총 4권 2책의 연활자본으로, 반곽은 16.0×21.6㎝이다. 사주단변이고, 행마다 경계가 있다. 10행 20자이고, 주는 쌍행이며, 상이엽화문어미이다.
[구성/내용]
『용호선생문집』의 권두에는 1910년 9월에 김황(金榥)이 지은 「중간서」, 조병덕(趙秉悳)[1800~1870]이 1861년 12월에 지은 초간본 서문과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에는 부(賦)와 시가 있고 오건(吳健)을 배향하려는 서원 창건과 관련된 일, 함양 사람을 대신하여 군납의 폐단을 진술하거나 간리(奸吏)[간사한 관리나 공리(公吏)]를 처벌해 주길 청하는 장문(狀文)이 실려 있다. 또 스승 정구에게 질문한 문목이 실려 있다. 권2에는 잡저, 서(序), 김우옹(金宇顒)[1540~1603]·정구 등에 대한 제문 및 숙모 노씨의 개인 기록이 실려 있다. 권3은 부록으로 제현의 시, 사우 간의 편지 및 유림에서 박문영을 애도하는 만사가 실려 있다. 권4는 부록으로 제문, 권도가 지은 「묘갈명」, 박상규(朴尙圭)[?~1948]가 지은 「행장」 및 「와룡정기(臥龍亭記)」가 실려 있다. 권말에는 초간본 박경기의 발문과 중간본 박찬은의 발문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시문집 『용호선생문집』은 박문영의 생애·교유·사승(師承)[스승에게 학문이나 기술 등을 배워서 이어받음] 관계 및 인조반정 이전의 남명학파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