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5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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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介庵集 |
영어공식명칭 | Gaeamjip |
이칭/별칭 | 『개암선생문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영숙 |
간행 시기/일시 | 1686년 - 양천익, 『개암선생문집』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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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 시기/일시 | 1846년 - 강정조, 『개암선생문집』 간행 |
소장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
간행처 | 남계서원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남계서원길 8-11[원평리 586-1] |
성격 | 문집 |
저자 | 강익 |
편자 | 강전|양천익|강정조 |
간행자 | 양천익|강정조 |
권책 | 2권 1책 |
행자 | 10행 20자 |
규격 | 광곽 21.8×18.2㎝ |
어미 | 상하이엽화문어미 |
권수제 | 개암선생문집 |
판심제 | 개암집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효우촌에서 출생한 개암 강익의 문집.
[저자]
강익(姜翼)[1523~1567]의 자는 중보(仲輔), 호는 개암(介庵)·송암(松庵), 본관은 진주이다. 당곡(堂谷) 정희보(鄭希輔)[1488~1547]에게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1520~1578], 구졸암(九拙菴) 양희(梁喜)[1515~1580] 등과 동문수학(同門受學)하고 덕계(德溪) 오건(吳健)[1521~1574] 및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1540~1603] 등과도 교유하였다.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위패를 봉안하고 남계서원(灆溪書院)의 사액(賜額)을 받도록 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병자호란 와중에 산실(散失)된 시문을 손자인 강전(姜絟)이 수습하여 정광연(鄭光淵)[1841~1891]에게 발문을 받아 정리하였다. 병자호란 후 증손 강대징(姜大徵)이 다시 편집하여 1662년(현종 3)에 정광연의 발문을 받았으나 편차(編次)[편집 순서]가 바르지 못하고 유문(遺文)이 있어 1686년 양천익(梁天翼)이 다시 교정하고 편집하여 발문을 지었다. 이것을 양천익이 남계서원에서 목판으로 초간본을 간행하였다. 1846년(현종 12)에 8대손인 강정조(姜延祚)가 현석(玄石) 박세채(朴世采)[1631~1695]의 강익 묘갈명을 받아 후쇄본을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2권 1책의 목판본이다. 권수제는 『개암선생문집』, 판심제는 『개암집』이다. 광곽은 21.8×18.2㎝이다. 계선(界線)이 있고, 10행 20자이며, 상하이엽화문어미(上下二葉花紋魚尾)가 있다.
[구성/내용]
『개암집』은 상하 2권 1책이다. 권상(卷上)에는 20여 수의 시, 김우옹의 「창수록서(唱酬錄序)」, 서(書) 6편, 「양진재기(養眞齋記)」, 「남계서원기(灆溪書院記)」, 단가(短歌) 3편이 있다. 권하(卷下)에는 세계(世系), 연보, 행장, 묘표문, 제문, 만장(挽章) 등이 있다. 강익을 남계서원에 승배(陞配)할 것을 청하는 소(疏)와 고유문, 해조관문(該曹關文) 등이 있다. 1846년에 후쇄할 때 박세채가 지은 강익의 묘갈명이 있다.
[의의와 평가]
『개암집』에는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16세기에 활동한 명망 높은 유림 명문가의 문장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경상남도 함양 지역 유림의 활동 양상을 자세하게 엿볼 수 있는 자료가 되는 문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