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5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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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咸陽斥和碑 |
영어공식명칭 | Anti-foreign Stel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349-1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경림 |
건립 시기/일시 | 1871년 - 함양척화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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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97년 12월 31일 - 함양척화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64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함양척화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 |
현 소재지 | 함양척화비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349-1 |
성격 | 비 |
관련 인물 | 흥선대원군|고종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비신[높이 110㎝, 너비 55㎝, 두께 18㎝]|이수[높이 40㎝, 너비 63㎝, 두께 25㎝]|기단[높이 9㎝, 너비 72㎝, 두께 45㎝] |
관리자 | 함양군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개항기 제국주의 침략을 경계하기 위해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에 세운 비.
[건립 경위]
개항기에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를 겪은 흥선대원군은 서양 오랑캐를 경계하고자 전국 주요 도로변에 척화비를 세우도록 하였다. 임오군란과 일제강점 이후 대부분의 척화비는 철거되거나 훼손되었다. 함양 상림 근처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함양척화비는 원형을 갖추고 있다.
[위치]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에 있는 상림공원 입구에 세워져 있다. 공원 입구에서 위천변을 따라 진입하면 산책로의 오른쪽에 있다.
[형태]
함양척화비는 작은 받침돌 위에 비신을 세우고 반달 모양에 5장의 연꽃 잎을 새긴 머릿돌이 올려져 있다. 비신 오른쪽 하단부의 모서리는 깨어져 있고 뒷면은 중간 부분이 둥글게 파여 있다. 비문은 앞면에 음각한 뒤 붉은 칠이 되어 있다. 비신은 높이 110㎝, 너비 55㎝, 두께 18㎝이다. 이수는 높이 40㎝, 너비 63㎝, 두께 25㎝이다. 기단은 높이 9㎝, 너비 72㎝, 두께 45㎝이다.
[금석문]
비신의 오른쪽에는 2줄의 큰 글씨로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즉 화친하자는 것이고,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자는 것이다[洋夷侵犯非戰則和主和賣國]’라고 적혀 있다. 그 옆에는 작은 글씨로 ‘우리들의 자손만대에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운다[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고 새겼다.
[현황]
상림공원 안에 세워져 있으며 주변은 잘 정리된 상태로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1997년 12월 31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64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근대로 접어드는 시점에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에 따른 조선 위정자들의 대외관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