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5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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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花山里石碑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1253-2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현열 |
건립 시기/일시 | 1723년 - 행찰방 최후태령 청덕선정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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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834년 - 행군수 조후제만 영세불망비 건립 |
건립 시기/일시 | 1883년 - 행찰방 고후익진 영세불망비 건립 |
건립 시기/일시 | 1828년 - 행찰방 장후대규 애민선정비 건립 |
건립 시기/일시 | 1726년 - 관찰사 조상국영복 애휼역민선정비 건립 |
현 소재지 | 화산리 석비군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1253-24번지 |
성격 | 비 |
양식 | 가첨석 |
관련 인물 | 최태령|조제만|성우증|고익진|장대규|조영복 |
재질 | 석재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에 모아 놓은 조선 후기 관리들의 선정비군.
[건립 경위]
조선시대 수동면 일대에서 찰방, 군수, 관찰사들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찰방에 대한 선정비가 4기, 군수 및 관찰사는 각 1기, 기타 1기이다. 특히 찰방에 대한 것이 많은데, 이는 화산리 일대에 조선 시대 사근도를 관할하는 사근역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근도의 본역은 사근역이며 속역은 총 14개였다.
[위치]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1253-24번지에 있다. 수동면 면소재지 내에 있으며 동쪽으로 수동파출소가 인접하고 있다.
[형태]
2018년 기준 확인된 비석은 총 7기이다. 그 중 귀부와 이수를 갖춘 것 1기, 비개가 없는 것 3기, 가첨석 형태의 비개가 있는 것 3기이다. 비개가 없는 2기는 재질과 그 형태가 유사하다. 비대에 장방형의 비신으로만 구성되었다. 가첨석이 추가된 3기는 그 형태나 모양이 다소 다르다.
[금석문]
비석 7기의 비명은 모두 확인되었으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행찰방 최후태령 청덕선정비(行察訪崔侯泰鹷淸德善政碑)」[1723년]
「행군수 조후제만 영세불망비(行郡守趙侯濟晩英世不忘碑)」[1834년]
「행찰방 성후우증 영세불망비(行察訪成侯祐曾英世不忘碑)」[순조대]
「행찰방 고후익진 영세불망비(行察訪高侯益鎭英世不忘碑)」[1883년]
「행찰방 장후대규 애민선정비(行察訪張侯大奎愛民善政碑)」[1828년]
「관찰사 조상국영복 애휼역민선정비(觀察使趙相國榮福愛恤驛民善政碑)」[1726년]
「국토보전 숭상궐덕 지방기좌 송정헌공덕비 거민뢰안 민각구전(國土保全 崇尙厥德 地方技佐宋政憲功德碑 居民頼安 珉刻求傳)」
[현황]
2018년 기준 석비군은 총 7기이다. 2006년 분포지도 조사 당시 6기로 표현한 것으로 볼 때, 2006년 이후 비석 1기가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2006년 당시에 돌담 위에 만든 철제 펜스도 모두 사라졌고 2018년 기준 화강암으로 축대를 쌓은 모습이다.
[의의와 평가]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일대는 조선시대 사근역이 있던 지역으로 서부 경상남도 역로의 중심에 해당한다. 지금은 사근역터를 찾을 수 없지만 남아 있는 석비군으로 인해 화산리 일대에 사근역이 존재하였던 점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