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5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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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咸陽梁喜神道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도촌리 21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재현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515년 - 양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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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580년 - 양희 사망 |
건립 시기/일시 | 1858년 - 함양 양희 신도비 건립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2년 3월 8일 - 함양 양희 신도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46호 |
보수|복원 시기/일시 | 2015년 6월~8월 - 함양 양희 신도비, 석재의 보존처리 및 담장 및 배수로 정비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함양 양희 신도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 |
현 소재지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도촌리 214 |
성격 | 신도비 |
양식 | 비좌이수 |
관련 인물 | 양희 |
재질 | 석재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비신[폭 90㎝, 두께 22㎝] |
소유자 | 남원양씨 영모제종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도촌리 대고대마을에 있는 양희의 신도비.
[개설]
양희(梁喜)[1515~1581]는 문신으로, 자는 구이(懼而)이고 호는 구졸암(九拙菴)이며 본관은 남원이다. 1580년(선조 13)에 장례원(掌隷院)의 판결사(判決事)에 이르렀으며, 같은 해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옥하(玉河)의 객관에서 병사하였다. 후에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함양의 구천사(龜川祠)에 제향되었다.
[건립 경위]
양희의 후손이 1701년(숙종 27)에 일로당(逸老堂)의 유지(遺址)에 건립한 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 이후 1858년에 현재 터에 건립된 함양 양희 신도비만 남아 있다. 비문은 구졸암의 7대손인 양정호(梁廷虎)가 이조판서 양관(兩館) 대제학 이덕수(李德壽)에게 부탁하여 지은 것이다.
[위치]
함양군에서 지곡면 방향의 국도24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가다가, 보산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돌아 공배길로 진입하고 대고대 다리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250m 정도 가면 신도비가 있다.
[형태]
함양 양희 신도비는 비좌이수(碑座螭首)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이수, 비신, 귀부는 모두 석재로 되어 있다. 이수는 일반적인 지붕형태의 묘사가 아닌 방형이며, 중간에는 해를 배치하고 그 양옆으로 새싹과 넝쿨손을 묘사한 것이 특이하다. 또한 개석을 붉은색과 청색으로 단청(丹靑)을 하였다.
[금석문]
함양 양희 신도비 비문에는 양씨가 탐라에서 유래된 내용과 신라시대 때 남원으로 사적(賜籍)되었던 사실을 전하고 있다. 그 외에 양희의 이력이 서술되어 있고, 동진사로 명에 갔다 돌아오다가 사망했다는 내용이 있다. 비문의 구체적인 내용은 『함양금석문총람(咸陽金石文總覽)』에서 살펴볼 수 있다.
[현황]
비는 규모 1칸이고 팔작지붕의 비각 안에 보호되고 있다. 그 주위로 돌담이 둘러져 있으며 작은 대문을 통해 출입하도록 하고 있다. 비신 자체는 양희의 손자인 양원(梁榞)이 마련한 것으로, 세월 탓인지 비신의 아랫부분 표면이 부식되어 떨어지고 있다. 2012년 3월 8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46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함양 양희 신도비의 비문은 대제학 이덕수가 찬술하였고, 글씨는 호조참판 노광두(盧光斗)가 썼다. 당시의 중앙정계와 경상우도 유림의 동향에 대한 내용이 곳곳에 보이고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