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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525
한자 林運孝子旌閭
영어공식명칭 Monument for Filial Son LimUn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한들로 19-1[백연리 129-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현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89년연표보기 - 임운 효자 정려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3년 - 임운 효자 정려, 현위치로 이건
현 소재지 임운 효자 정려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한들로 19-1[백연리 129-2]지도보기
성격 정려비
양식 맞배지붕
정면 칸수 1칸
측면 칸수 1칸

[정의]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에 건립된 임운의 효행 정려.

[위치]

임운 효자 정려함양군 함양읍 백연리 하백마을 앞에 있으며 난평삼거리의 동쪽인 한들로 변에 해당한다. 한들로 현대종합기계 북서쪽 공터에 정려가 있다.

[변천]

임운(林運)[1709~1775]은 본관이 나주이고, 만회(晩悔) 상재(尙榟)의 후손이다. 임운은 어머니가 병이 생기자 변을 맛보고 병의 차도를 판단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여막살이를 하는데 호랑이가 호위하였다고 전한다. 임운의 효행이 나라에 알려져 1789년(정조 13)에 정려가 내려졌다. 이후 1983년에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로 이건하면서 한글로 효자비를 다시 세웠다고 한다.

[형태]

정려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내부에 있는 비석은 비신과 비대만 갖춘 형태로 비신의 머리부분을 둥글게 처리하였다. 정려기는 병조참의를 지냈던 박효삼(朴孝參)이 지었고, 기명은 ‘효자사인임운지려(孝子士人林運之閭)’이다. 비명은 ‘효자사인나주임운지려(孝子士人羅州林運之閭)’이다.

[현황]

정려각은 2단의 축대와 ‘ㄷ’자 형태의 담장을 둘렀으며, 붉은색 단청이 되어 있다. 정려 앞에는 2그루의 나무가 있다. 비교적 양호하게 관리되고 있는 편이다.

[의의와 평가]

함양군에 산재한 정려 중 비교적 양호하게 관리가 되고 있는 편이다. 주변에 고철 야적장 등이 있어 환경이 좋지 못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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