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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521
한자 宋文旌閭碑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황곡리 1313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현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555년연표보기 - 송문 정려비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830년 - 송문 정려비, 정려각의 훼손이 진행되어 비석을 새로 세움
현 소재지 송문 정려비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황곡리 1313 지도보기
성격
양식 맞배지붕
정면 칸수 1칸
측면 칸수 1칸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황곡리송문에게 내려진 정려비.

[위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황곡리 이문마을 앞 들판에 있다. 서쪽으로 안의천이 북으로 흐르고 있다.

[변천]

송문(宋文)은 어릴 때부터 효행이 지극하여 12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상례를 지극히 모셨다. 어머니의 병환에 변을 맛보며 구완하였고, 돌아가시자 3년상을 무사히 치렀다. 이런 효행으로 안의훈도(安義訓導)로 천거되었으며, 1555년(명종 10)에 정려가 내려졌다. 이후 세월이 흘러 정려각의 훼손이 심해지자 1830년(순조 30)에 7대손인 상흠(尙欽)이 새롭게 비석을 세웠는데 비문은 7대손인 송시덕(宋時德)이 적었다.

[형태]

정려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형태이고, 그 내부에 비석이 있다. 비석의 형태는 비받침, 비몸, 비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받침은 자연대석이며 비지붕은 다소 큰 가첨석을 올리고 그 아래 좌우에는 돌기둥으로 받쳐 놓았다.

[현황]

정려각은 이문마을 앞의 들판에 자리하고 있다. 정려각 주변은 사람의 출입이 가능하도록 논보다 높게 대지를 조성하였다. 정려각 외곽에는 콘크리트 담장을 둘렀다. 입구 좌측 문 기둥에는 ‘기一九六九년양九월三일’이라 새겨져 있는데, 1969년 9월 3일에 정려각 담장을 만들고 그것을 기념하여 새긴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현재 송문 정려비는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다. 정려각은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보고 느끼는 교육의 효과가 있으며, 한편으로 이정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정려각 일대는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지역이고 도로와 인접한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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