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4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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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韓獨立促成國民會靑年團咸陽支部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동석 |
[정의]
1946년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설립된 대한독립촉성국민회청년단 소속 지부.
[개설]
이승만 주도의 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김구 중심의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중앙위원회가 해체되면서 1946년 2월 8일 대한독립촉성국민회로 통합되었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함양지부는 1946년 11월 23일 결성되었고, 산하에 대한독립촉성국민회청년단 함양지부를 두었다. 함양군 산하 12개면 1읍에 읍·면 단부를 조직하여 회원이 약 1,000명이었다.
[설립 목적]
대한독립촉성국민회는 자주 독립을 촉성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단체였다. 신탁통치 반대, 미·소 공동위원회 반대, 좌익반대 등에 앞장섰다.
[변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내부에서는 임시정부를 받들어 자율정부로 대신하자는 임시정부 봉대파(奉戴派)와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의 전망이 흐려짐에 따라 남한만의 총선거로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이승만계의 주장으로 의견이 분열되었다. 이후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는 미·소공동위원회의 전망이 흐려지게 되자 민족통일총본부(1946. 6. 10.)·민족대표자대회(1947. 7. 1.) 등 이승만 계열의 우익 국민운동 조직으로 변화 또는 발전하여 가면서 남한 단독정부를 추진하는 이승만 지지 세력이 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함양 지역은 이미 좌익 단체들이 주도권을 장악하여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한독립촉성국민회청년단 함양지부는 우선 사상 계도와 선도에 주력하여 1차 목표로 반공사상 확산을 설정하였다. 반공사상이 투철한 단원 50명을 특공대로 편성하여 합숙훈련을 거친 다음 경찰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정보 제공, 지리 안내 등 역할을 맡았다. 또 대한독립촉성국민회청년단 계열의 김경도(金景道)[1904~?]가 함양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의의와 평가]
대한독립촉성국민회청년단 함양지부는 빨치산 토벌 등 반공 투쟁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