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381 |
---|---|
한자 | 咸陽衡平社 |
영어공식명칭 | Social Equality Society of Hamyang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양미숙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 있었던 백정의 신분 해방 운동 단체.
[개설]
일제강점기 백정들이 신분 차별 철폐와 인권 평등을 위하여 1923년 4월 24일 진주 지역에서 조직한 형평사(衡平社)는 경상남도를 비롯한 영남과 호남 및 중부 지역에 지부가 창립되는 등 조직이 확산되었다.
[설립 목적]
함양 지역 백정의 신분 차별 철폐와 함께 인권 및 평등을 추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변천]
1925년에 경상북도 예천에서 발생한 농민의 형평사 습격 사건으로 본부를 진주에 두자는 경상도 기반의 진주파와 서울로 옮기자는 서울파 간 갈등이 고조되었고, 그로 인해 형평 운동의 주도권은 본부를 서울에 두자는 중부 출신 활동가들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이후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함양형평사 활동은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함양형평사는 1927년 5월 20일에 혁신총회를 개최하여 임원을 개선하는 등 내부를 혁신하기 시작하였다. 1927년 6월 1일에는 경상남도 함양 천도교 종리원(宗理院)에서 창립 5주년 기념 축하식을 거행하였으며, 1927년 6월 5일 형평청년회를 설립하였다.
형평사는 1930년 전후에 분사 수가 160개를 넘었으나 1931년 만주사변과 1936년 중일전쟁 등 일제의 군국주의화로 그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다. 특히 1935년에는 조선형평사 회원 간 분열이 일어나게 되면서 형평사의 조직과 활동이 위축되었다. 조선형평사는 1935년 4월 24일 13차 정기총회에서 조직의 명칭을 대동사(大同社)로 변경하였다. 형평사는 본래의 성격을 잃으며 이권 확보와 유지를 위한 이익단체로 변질되었고, 일제에 적극 협력하는 단체로 변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