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3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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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日帝強占期夜學 |
영어공식명칭 | Night School during the Colonial Period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양미숙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일제강점기 정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사회 교육.
[개설]
우리나라를 강제 병합한 일제는 전통적인 조선의 교육 제도를 공립화하는 데 매진하였고, 이로 인해 서당 등 향촌 자치적인 교육기관이 모두 철폐되면서 배우고자 하는 학생 수에 비해 학교 수가 턱없이 부족해졌다. 그러나 3·1운동 이후 민족실력양성운동이 전개되면서 전국 각 지역의 청년회가 야학 또는 강습소를 설치·운영하였다.
경상남도 함양의 경우에 신간회 함양지회 회원들이 실시한 야학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1927년 10월에 창립된 신간회 함양지회 회원들은 다수 야학을 직접 경영하거나 교사로서 참여하였다. 신간회 함양지회 회원들의 야학 설립 주요 목적은 청년들이 문맹을 타파하고 독립사상을 고취시키는 것이었다.
[함양 도천야학]
함양 도천야학은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道川里)에 노동야학이 없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 지역 유지 하종탁(河宗鐸)·하재영(河在英)·하벽룡(河碧龍) 등 3명이 도천노동야학회를 설립하였다. 도천노동야학회의 창립일은 1928년 12월 5일이다. 생도 수는 30여 명이었으며, 강사는 하종탁과 하재화(河在和) 두 명이었다.
도천노동야학회는 1929년 4월 25일 오전 11시 동리 송오(松墺) 운동장에서 동면 월암리(月岩里) 노동야학생을 포함해 280명이 집합한 가운데 46종의 춘계 대운동회를 개최하였다.
[석복면 노동야학]
경상남도 함양군 석복면(席卜面)에서는 1928년까지 노동야학이 1개소도 없는 것을 유감으로 여겨 1928년 여름부터 무산아(無産兒)를 위하여 야학을 설립하였다. 강사는 강태수(姜太守) 등 2명이며, 무보수로 매일 밤 성심을 다해 노력한 결과 남녀를 합쳐 생도가 40여 명으로 늘어났다.
[함양군 노동야학회 대운동회]
경상남도 함양군 석복면(席卜面) 백연 노동야학회는 1929년 4월 29일 오전 10시 상림 운동장에서 함양공립보통학교장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춘계 대운동회를 개최하였다. 춘계 대운동회에서는 동면 이은리(吏隱里)·죽림리(竹林里)·함양면 상동(上洞) 3개 노동야학생 200여 명을 포함하여 총 380여 명의 학생이 참여한 가운데 삼십삼적(三十三積)의 미묘경기(美妙競技)를 종일토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