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3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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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藪院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양훈 |
관할 지역 | 수원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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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령과 제도 |
[정의]
조선시대에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 있었던 관영 숙박시설.
[제정 경위 및 목적]
수원(藪院)은 안의현 치소에서 남쪽으로 1㎞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었던 조선시대 관영 숙박시설이었다. 수원은 안의현 치소에 인접하고 있어 관찰사 등 주요 관리들이 안의현 치소(治所)에 들어가기에 앞서 머물렀던 곳일 가능성이 높다. 수원에서 관찰사 등 주요 관리들이 안의현의 민심 동향을 파악하거나 안의현 관리들의 공과를 살펴보기도 하였을 것이다. 또한 경상남도 함양군으로 나아가는 교통로상에 있어 함양군으로 가기 전에 수원에서 숙식하거나 말을 교체하였을 것이다.
[관련 기록]
수원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안음현 역원조에 “수원은 현 남쪽 5리 지점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18세기의 지리지인 『여지도서』에는 보이지 않고 『안의군읍지』의 역원조에서 “수원은 현 남쪽 5리 지점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고 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수원은 18세기 중반에 편찬된 『여지도서』의 간행 이전에 이미 소멸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수원은 위치를 알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한 관계로 현재의 위치를 비정하기 어렵다.
[변천]
수원의 설치와 폐지 시기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기록은 없다.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그 이전에 설치된 것은 분명하다. 조선 건국 이후 전국적으로 원제(院制)를 지속적으로 정비하고, 원 주변의 지방 유력가를 원주(院主)로 삼아 관리하게 한 점을 보면, 수원도 이에 따랐을 것이다. 이후 수원은 국가의 관리하에 운영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성종 대에 편찬된 『경국대전』에 전국의 원을 국가의 관리 아래에 두고, 국가가 각 원에 원전(院田)을 지급하여 경비와 급료로 충당하는 법령이 있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국영화된 원은 작은 규모의 토지로 운영이 어려워지자 16세기 중반부터 점차 방치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소실된 원은 복구되지 않았으며, 숙종조 이후에는 대부분의 원이 소멸된 것으로 전해진다. 수원도 이와 같은 경향을 따라 늦어도 18세기 중엽 이전에 폐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수원의 정확한 현재의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안의면에서 함양읍 사이의 옛길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