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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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信院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양훈 |
[정의]
조선시대에 경상남도 함양군에 있었던 관영 숙박시설.
[제정 경위 및 목적]
덕신원은 함양읍성에서 서쪽으로 8㎞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었던 조선시대 관영 숙박시설이었다. 덕신원은 관찰사 등 주요 관리들이 함양군·전라북도 남원시·경상남도 하동군 등지를 순행할 때 숙식을 해결하거나 마필을 교체하였을 것이다. 또한 함양·남원·하동을 오가는 많은 여행객이 이곳에 머물렀기 때문에 함양과 그 주변 지역 관리들의 공과를 살펴보거나 민심 동향을 알기 위해 머물기도 하였을 것이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 함양군 역원조에는 “덕신원은 군 서쪽 20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여지도서』에는 “덕신원은 부의 서쪽 20리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고 되어 있으며, 이후의 지리지에도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덕신원은 18세기 전반 이전에 폐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덕신원은 위치를 알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한 관계로 현재의 위치를 비정하는 데 무리가 있다.
[변천]
덕신원의 설치와 폐지 시기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기록은 없다. 1469년에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 함양군 원우조에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그 이전에 설치된 것은 분명하다. 조선 건국 이후 전국적으로 원제(院制)를 지속적으로 정비하고 원 주변의 지방 유력가를 원주(院主)로 삼아 관리하게 한 점을 보면, 덕신원도 이에 따랐을 것이다. 이후 덕신원은 국가의 관리하에 운영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성종 대에 편찬된 『경국대전』에 전국의 원을 국가의 관리 아래에 두고, 국가가 각 원에 원전(院田)을 지급하여 경비와 급료로 충당하는 법령이 있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국영화된 원은 작은 규모의 토지로 운영이 어려워지자 16세기 중반부터 점차 방치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소실된 원은 복구되지 않았으며, 숙종조 이후에는 대부분의 원이 소멸된 것으로 전해진다. 덕신원도 이와 같은 경향을 따라 늦어도 18세기 중엽 이전에 폐지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덕신원은 현재의 위치를 비정하기 어렵지만, 경상남도 함양군·하동군·전라북도 남원시 간의 옛길 복원에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