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3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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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沙斤院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양훈 |
관할 지역 | 사근원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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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령과 제도 |
[정의]
조선시대에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에 있던 관영 숙박시설.
[제정 경위 및 목적]
사근원(沙斤院)은 사근역을 지나가는 관료를 비롯한 여행객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영 숙박시설이었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 함양군 역원조에는 “사근원은 사근역 동쪽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여지도서』에는 “사근원은 역의 동쪽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라고 되어 있으며, 이후의 지리지에도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사근원은 18세기 중엽 이전에 이미 폐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근원은 사근역의 동쪽에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현재 사근산성 아래의 수동면 화산리로 비정되고 있다.
[변천]
사근원의 설치와 폐지 시기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기록은 없다. 다만 1469년에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 함양군 원우조에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그 이전에 설치된 것은 분명하다. 조선 건국 이후 전국적으로 원제(院制)를 지속적으로 정비하고 원 주변의 지방 유력가를 원주(院主)로 삼아 관리하게 한 점을 보면, 사근원도 이에 따랐을 것이다.
이후 사근원은 국가의 관리하에 운영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성종 대에 편찬된 『경국대전』에 전국의 원을 국가의 관리 아래에 두고, 국가가 각 원에 원전(院田)을 지급하여 경비와 급료로 충당하는 법령이 있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국영화된 원은 작은 규모의 토지로 운영이 어려워지자 16세기 중반부터 점차 방치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소실된 원은 복구되지 않았으며, 숙종조 이후에는 대부분의 원이 소멸된 것으로 전해진다. 사근원도 이와 같은 경향을 따라 늦어도 18세기 중엽 이전에 폐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경상도 관찰사 등 주요 관리들은 함양군 및 주변 고을을 순행할 때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였거나 마필을 교체하였을 것이다. 또한 경상남도 함양군, 산청군, 거창군 방면으로 향하는 여행객이 많이 머물렀던 곳이어서 백성들의 민심과 관리들에 대한 공과 정보를 수집하는 데 적절한 장소였다. 따라서 사근역의 동쪽에 인접한 사근원은 함양군의 사회상과 조선시대 역원체계를 복원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