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3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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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加乙山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옥산리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김양훈 |
관할 지역 | 가을산소 -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옥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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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령과 제도 |
[정의]
고려시대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옥산리에 있던 특수 행정구역.
[개설]
소(所)는 향·부곡과 더불어 고려시대의 특수 지방 행정구역이며, 왕실과 관아 등 국가에서 필요한 공물을 생산하였다. 소는 전국 275곳, 경상도 49곳, 함양 지역에는 3곳이 있었다. 대체로 고려시대에 원활한 공물 확보를 위하여 중앙 정부가 정책적으로 소를 전국에 설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필요로 하는 특정물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거나, 혹은 이에 상당하는 물품의 대납을 위한 역(役)을 전담하던 곳이라는 점에서 군현제하의 일반촌락과는 구별되었다. 소의 주민은 신분적으로는 양인이지만, 일반 백성들이 특정 물품의 생산을 꺼리고 천시해 일반 군현민과는 차별되었다. 고려 중기 이후 소에 대한 과중한 부역과 수탈로 해당 주민들이 유망하였고, 점차 그 기능이 상실되었다. 12세기 이후 소는 점차 해제되어 일반 군현으로 승격되거나 기존 군현의 일부로 흡수되었으며, 조선 초기 군현제가 정비되면서 소멸되었다.
[관련 기록]
가을산소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안음현 고적조에 “가을산소, 현 서쪽 40리 지점에 있으며, 다른 이름은 옥산(玉山)이다. 고려 때에는 함양 속현이었는데, 그 뒤에 내속되었다[加乙山所 在縣西四十里 別號玉山 高麗時屬咸陽縣 後來屬]”고 처음 등장한다. 이후 『여지도서』, 『안의군읍지』 등에도 기록되어 있다.
[내용]
가을산소는 고려시대 함양현에 속하였다가, 안음현에 내속한 소이다. 가을산소는 안음현 치소에서 서쪽 40리[약 16㎞]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가을산소의 현재 위치는 함양군 서상면 옥산리로 추정된다. 이곳은 남강변에 있어 무주와 안의 간의 교통이 발달한 곳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옥산창이 있어 사람과 물자의 왕래가 활발하였던 곳이기도 하였다. 옥산리의 다른 이름은 갈뫼였는데, 가을산의 가(加)와 을(乙)을 합쳐 갈(乫)이라 하여 갈뫼라고 불린 것으로 보인다. 이같이 역사지리학적 측면을 살펴보면 가을산소는 옥산리로 비정할 수 있을 것이다.
[변천]
가을산소의 설치와 폐지는 언제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지리지』에서 “소 하나, 가을산이다. 예전에는 함양에 붙였는데, 지금은 없어져 직촌이 되었다[所一, 加乙山 舊屬咸陽, 今亡爲直村]”라고 기록된 점을 보아 『세종실록』이 편찬된 1452년 이전에 폐지된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조선시대 옥산창을 두었고, 점촌(店村)이라는 지명이 있는 점을 보면, 여전히 옥산리에서 물품을 생산하거나 보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가을산소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때 소의 성격과 지명 변천 과정을 살펴보는 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