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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168
한자 金塘里
영어공식명칭 Geumda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미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14년 - 경상남도 안의군 서상면에서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으로 편입
금당리 -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가구수 168가구
인구[남/여] 306명[남 139명, 여 167명]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金塘里)는 계곡을 따라 형성된 넓은 들과 방지성 안쪽지역이라는 의미를 가진 지명으로 추정된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방지동(芳池洞), 추천동(楸川洞), 옥산동(玉山洞) 일부를 병합하여 금당리(金塘里)를 개설하고 경상남도 안의군 서상면에서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으로 편입하였다. 현재 금당리는 추상(楸上), 추하(楸下), 구평(九坪), 방지(芳池) 4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추상과 추하마을의 형성 시기는 삼국 시대로 추정된다고 하며 담양전씨, 김해김씨, 함안조씨, 진양강씨 등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추상과 추하마을은 가래나무를 베어내고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하여 가르내라고 불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추천(楸川)이라고도 하였다. 추상마을은 추하마을 위에 있어 상촌(上村)이라고도 하였고, 추하마을은 추상마을 아래쪽에 있어 하촌(下村)이라고도 하였다.

구평마을은 삼국 시대에 성 밖에 형성된 농경지였다고 하며, 근대에 거창유씨가 위천 금곡에서 들어와 살면서 느티나무를 심고 마을을 가꾸었다고 한다. 구평마을은 마을 뒷산의 모양이 거북이 등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마을 위에 거북이 모양의 바위가 있었다 하여 구평(龜坪)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구평(龜坪)이 구평(九坪)으로 개칭되었다.

방지마을은 삼국 시대 방지성(芳池城), 합미성(合米城)이 있었으므로 그 시기에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조선 시대 임진왜란 때 함양박씨가 경상남도 합천에서 이거하여 터를 잡았고 그 후 안동김씨, 신안주씨, 함양오씨, 해주오씨, 함안조씨 등이 이거해 왔다고 한다. 마을 앞산의 봉우리가 연못에 떠 있는 연꽃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꽃다운 못이라는 뜻으로 방지라는 지명이 붙여진 것이라 한다.

[자연환경]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영취산[1,075m] 북쪽 능선과 남덕유산[1,507.4m]의 남쪽 능선의 동사면에 있다. 북쪽으로는 남덕유산, 남쪽으로는 영취산과 이어지는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의 서쪽 산지는 백두대간에 속하며 서쪽 전라북도 장수군과 경계를 이루는 분수령이다.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의 서쪽 산지에서 가장 높은 곳은 구시봉[1,014.8m]이며 그보다 남쪽에 있는 민령(민재)이 가장 낮아 고개를 이룬다.

서쪽 산지에서 발원한 하천들은 동쪽으로 흘러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의 가운데로 모여들며 넓은 골짜기를 형성하여 침식분지를 이루고 있다. 이들 하천은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의 동쪽 경계부를 흐르는 남강으로 합류한다.

[현황]

2018년 8월 기준으로 금당리에는 168가구에 306명[남자 139명, 여자 167명]이 살고 있다. 금당리의 4개 행정리 중 추하마을이 가구 수와 인구가 가장 많다.

금당리의 추하마을 남쪽에 통영대전고속도로서상나들목이 있으며 북서쪽으로 달리는 고속국도는 금당리의 서쪽 산지를 육십령터널로 관통하고 있다. 금당리의 주요 농특산품으로는 벼, 인삼, 곶감 등이 있으며 구시봉 동쪽 아래에 산삼자연휴양관과 산삼휴양림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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