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1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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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鳳田里 |
영어공식명칭 | Bongjeo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미영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우전동·내오동·봉평동 일부를 병합하여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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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경상남도 안의군 서하면에서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으로 편입 |
봉전리 -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 |
성격 | 법정리 |
가구수 | 213가구 |
인구[남/여] | 407명[남 198명|여 209명]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鳳田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곳의 대표 마을인 봉평동(鳳坪洞)과 우전동(于田洞)의 이름을 따서 봉전리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경상남도 안의군 서하면에서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으로 편입되었으며 이때 우전동과 내오동·봉평동 일부를 병합하여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를 개설하였다. 현재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는 봉전, 우전, 반정(盤亭), 월평(月坪), 오현(梧峴) 등 5개 자연마을이 행정리를 이루고 있다.
봉전마을은 고려말 충신인 전오륜의 후손이 조선 인조 때 거창 마리면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한다. 원래는 봉평마을 혹은 새들이라고 하였으나 조선 말기에 한자화 하면서 신평(新坪)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봉전(鳳田)이라 개칭되었다.
우전마을은 정유재란 때 치열한 전투를 한 지역으로 황석산성에서 수백 명이 통곡을 하며 절벽으로 뛰어내려 목숨을 잃었는데 그때의 통곡 소리와 고함이 우레와 같이 천지를 진동했다고 하여 우뢰터라 하다가 우라터로 음이 변했다고 한다. 황석산성 남문으로 통하는 길의 입구에 있으므로 정유재란 이후에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한자화하며 뇌전(雷田)으로 불리다가 우전(于田)으로 바뀌었다.
반정마을은 조선 영조 때 정선전씨가 전답을 개간하여 집을 짓고 살았으며 유랑민들이 모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전해진다. 구안의 현청에서 서상 사이의 중간지점에 있다고 하여 반정이라 하였다고 한다.
월평마을은 조선 헌종 때 인근 오현마을에서 사람들이 이곳으로 들어와 터를 잡고 개간하여 형성된 마을이라 한다. 마을 앞들에 반달 모양의 큰 바위가 있어 달밭들이라 부르기도 하였고 새로 터를 잡아 개간했다고 하여 새터라고도 불렀는데,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월평으로 개칭되었다.
오현마을은 조선 영조 말 담안에서 거창신씨가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오동나무가 있어 머구재라 불리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한자화하면서 오현으로 개칭되었다.
[자연환경]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는 황석산[1,192.5m]의 남서쪽, 거망산[1,184m]의 남쪽 사면에 해당하며 이들 산지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는 하천들에 의해 형성된 계곡이다. 황석산과 거망산에서 발원하는 하천들이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의 가운데로 모여들어 봉전천을 이루고 남쪽으로 흐르며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의 남쪽 경계부에서 동쪽으로 흐르고 있는 남강으로 합류하고 있다. 곡류하는 남강변 기암괴석들의 빼어난 경관에 거연정과 군자정이 어우러져 함양의 8경 중 하나인 화림풍류를 이룬다.
[현황]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의 남쪽에는 국도26호선인 육십령로가 남강변을 따라 지나고 있으며 그 남쪽으로 통영대전고속도로가 나란히 나 있다. 2018년 8월 기준으로 봉전리의 5개 마을에는 213가구에 407명[남자 198명, 여자 209명]이 살고 있으며, 봉전·우전·반정·월평·오현마을 중 우전마을에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주요 농특산품으로는 봉전마을에서 양파·사과·고로쇠가, 우전마을에서 고로쇠·채소가, 반정마을에서 사과·양파·콩이, 월평마을에서 양파·곶감·사과가, 오현마을에서 곶감·포도가 생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