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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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湖里 |
영어공식명칭 | Namho-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미영 |
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경상남도 함양군 엄천면에서 경상남도 함양구 휴천면으로 편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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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원촌동·동호동·한남동을 병합하여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 개설 |
남호리 -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 | |
성격 | 법정리 |
가구수 | 111가구 |
인구[남/여] | 189명[남 93명|여 96명]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에 속한 법정리.
[명칭 유래]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는 대표 마을인 한남마을(漢南洞)의 ‘남’과 동호마을(桐湖洞)의 ‘호’를 합하여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가 되었다.
[형성 및 변천]
경상남도 함양군 엄천면에 속하던 원촌동, 동호동, 한남동을 병합하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가 되었다.
남호리의 원기마을(院基洞)은 원터, 원촌마을이라고도 불리었다. 남호리에서 제일 먼저 생긴 마을로 원기라 하다가 원기동이라 불리게 된 것이라 전한다. 전해 내려오는 설화에는 세종의 왕자 한남군이 새우섬에 유배되었을 때 고을 원(員)들이 문안와 쉰 곳이라 하여 원터라 했다고 한다. 한편 조선 숙종 때 역원법에 의해 광혜원이 설립되어 숙식시설인 다락집을 지었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호마을은 신라 헌강왕 때 당대 풍수역학도 7인에게 결언선사를 시켜 창건한 엄천사의 절터였던 곳으로 엄천사를 창건한 이후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 숙종 때까지 절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영조 때 하동정씨가 진주에서 들어와 터를 잡고, 정조 때 기계유씨가 경주에서 옮겨 와 살았다고 한다. 이 절터가 마을로 변하면서 동호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한남마을은 세조 때 한남군이 유배를 와 사약을 받은 곳으로 한남군의 이름을 따 한남마을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단종 복위 운동을 일으켰던 사육신 중 김문기(金文起)의 영정이 이곳 김녕김씨 집안에 보관 중인 것으로 보아 이후에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환경]
동쪽으로 길게 뻗은 법화산[992.9m]의 동쪽 능선의 남사면에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가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의 북쪽은 법화산의 동쪽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임천강이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는 북쪽으로 산지를, 남쪽으로 임천강을 끼고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이 나타나는 곳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는 엄천강 하류에 있어 각종 물고기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 과거 은어가 많이 잡혀 낚시꾼들이 많이 몰려들기도 하였다.
[현황]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에는 한남군의 유배지인 새우섬이 있다. 단종 복위 운동 때 군 동원을 맡았던 충의공 김문기의 영정은 그 후손들이 보존하고 있다. 입당신과 충묘비에 대한 신화가 전해지며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관영차밭 조성에 대한 사적과 전설들이 전해 내려온다.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는 2018년 8월 기준으로 111가구에서 189명[남 93명, 여 96명]이 살고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를 이루는 동호마을에는 42가구에 69명이, 원기마을에는 27가구에 35명이, 한남마을에는 42가구에 85명이 살고 있어 한남마을에 가장 많은 인구가 살고 있다. 주요 농특산품을 살펴보면 동호마을에서는 벼·홍화·토종꿀·고사리·산나물 등이, 원기마을에서는 벼·곶감·밤·토종꿀·산나물·고사리 등이, 한남마을에서는 벼·밥·고사리·산나물 등이 생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