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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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盤里 |
영어공식명칭 | Geumban-ri |
이칭/별칭 | 금바실,금반동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미영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금반동과 석정동을 병합하여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금반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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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경상남도 함양군 휴지면에서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으로 편입 |
금반리 -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금반리 | |
성격 | 법정리 |
가구수 | 93가구 |
인구[남/여] | 216명[남 98명|여 118명]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에 속한 법정리.
[명칭 유래]
금반리는 금바실 또는 금반동이라 하였는데 금이 나온 곳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설이 있다. 또 다른 유래로는 이 마을이 금소반(金小盤)처럼 생겼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는 설과 여인이 병목을 잡고 금반옥배(金盤玉盃)에다 술을 따르며 권주가를 부르고 춤추는 형국이라 하여 금반이라 하였다는 설이 전해진다. 석정동은 돌정지, 석정(石亭), 수철점(水鐵店)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현재에도 수령이 수백 년 넘은 정자나무 밑동에 큰 돌이 끼어 있어 석정동이라 한다고 한다. 조선 정조 때 실학자인 우정규가 살았던 곳이다. 금반동의 북쪽에 있는 양촌은 양지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산지의 남쪽 사면에 있어 햇빛이 많이 드는 곳이다. 반면 금반동의 남쪽에 위치한 음촌은 음지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으로 산지의 북사면에 있어 햇빛이 적게 드는 곳이라 붙여진 지명으로 보인다.
[형성 및 변천]
함양군 휴천면 금반리는 금반, 석정, 양촌[양지], 음촌[음지] 등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먼저 청주한씨와 합천이씨가 들어와 살았다고 전해진다. 금반과 석정이 금반리의 동쪽과 서쪽에 각각 자리하며 먼저 형성되었고, 그 뒤 두 마을 사이로 새로이 양촌과 음촌 마을이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경상남도 함양군 휴지면에서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으로 편입되었고, 금반동과 석정동을 병합하여 금반리가 개설되었다.
[자연환경]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금반리의 남쪽으로 법화산이 솟아 있고 서쪽 상류의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월평리에서 흘러드는 서주천이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금반리를 가로지르듯 동쪽으로 흐르고 있다. 북쪽은 낮은 산지이며 남쪽은 법화산[992.9m] 북사면에 해당되는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현황]
금반리는 함양군 휴천면의 중앙에 있고 가장 인구가 많은 곳이다. 2018년 8월 말 기준으로 93가구에 216명[남 98명, 여 118명]이 살고 있다. 여자의 인구가 더 많아 성비는 높으며 전형적인 촌락의 인구 구조를 보인다.
시군도3번의 휴천로가 서주천변을 따라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금반리를 가로지르고 있다. 금반리의 주요 농특산품은 밤, 양파, 고사리, 산나물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