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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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體育 |
영어공식명칭 | Physical Education |
분야 | 문화·교육/체육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백승엽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신체활동을 통하여 심신을 단련하고 여가 및 운동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수행하는 활동.
[개설]
인간의 체육 활동에 대한 기록과 유물이 뚜렷하게 남아 있지 않지만, 인간의 역사에서 남긴 여러 자료와 문헌을 통하여 인간의 생활양식과 그들이 행하여 오던 체육과 스포츠 활동에 대한 모습을 추적해 볼 수 있다.
인간의 신체활동의 형태는 일상생활 속에서 나타나게 되었고, 자연환경과 생활환경에 초점을 맞추면서 발전하였다. 우선, 인간은 의식주 해결을 위하여 수렵, 채집, 어로 생활을 해 왔었고, 맹수의 공격과 야생동물의 위협에서 자신의 몸과 종족을 보존하기 위하여 무리지어 생활하였다. 이러한 인간의 생활에서 신체적 발달은 주로 가벼운 노동이나 생활필수품을 획득하기 위한 신체활동에 기반하였다. 강과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야 하였고, 산이나 들에서 나무 열매와 짐승들을 잡기 위하여 체력과 기술을 연마하였다. 이와 함께, 불의 발견과 다양한 생활 용품으로서 도구를 개발하면서 한 지역에 정착하여 오랫동안 부족 생활이 가능하게 되었다. 더불어 인간의 생활에서 무용과 유희는 제례의식과 종교의식으로서 매우 중요하게 행해졌다. 특히 정착 생활이 가능해지면서 주변의 부족들과 경쟁하고 전쟁을 치르게 되었으며, 종족을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막강한 군대 양성이 필요하였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도 체육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되었고 체육이 교육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교육의 목적은 지덕체(智德體)를 조화롭게 발전시켜 완전한 인간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중에서도 체육은 다양한 종류의 신체활동을 통해 개인의 신체적 발달과 건강 증진 및 유지를 도모하고, 사회적 적응력과 정신적·정서적 만족감을 배양하여 바람직한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데 매우 중요한 교육 활동이다. 따라서 인간은 체육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자발적 참여를 통하여 건강한 사회의 존속과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체육의 중요성이 높아졌고, 이에 따라 많은 나라들이 “체력이 국력이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국민들의 체육활동을 권장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1962년에 체육 발전과 진흥을 도모하고 국민의 체력을 증진하고 건전한 정신과 명랑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국민체육진흥법」이 제정되었다. 이미 1900년대 구한말 갑오경장을 기점으로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하여 현대 체육활동을 대표하는 축구·야구·배구 등의 구기 종목이 소개되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일제 침략기에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역에서 체육활동이 부진하였으나, 3.1 독립운동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체육활동에 관심을 가졌다. 이를 기반으로 1920년 4월 조선체육회가 창립되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체육단체가 되었다.
[변천]
함양군은 광복 이후부터 축구, 정구, 씨름, 육상 등의 종목에 많은 군민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면 대항 경기가 진행되었고, 특히 단오, 백중, 추석 등의 명절에는 연중행사로 축구대회와 씨름대회가 개최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체육행사가 매해 성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여 지역행사로 그치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함양군의 체육 발전은 일제 강점기인 1911년 함양공립보통학교와 천령국민학교, 1912년 안의보통학교가 개교함으로서 시작되었다. 이들 학교는 함양군의 근대 교육기관으로 개교하였고, 15개 교과목 속에 체조 과목이 채택되어 함양군의 체육 교육이 최초로 시작되었다. 1920년대에는 함양군 함양읍 죽곡리 출신인 양지환(梁址煥)을 중심으로 체육활동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특히 양지환은 함양청년회 초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함양 지역 신간회를 조직하여 함양 지역의 항일운동과 농촌계몽 운동을 위한 교육과 체육대회 개최를 주도하였다.
1945년 광복 이후 함양군의 체육은 경남체육협회[경남체육회 전신]의 창립과 함께 함양 지역의 체육인, 외지에 나가 있던 하준수, 김창환과 평소 체육을 좋아하였던 함양 지역의 체육인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1946년 함양군에서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체육활동을 하였던 지역 체육인들이 비공식적인 함양체육회를 만들어 축구와 씨름 등의 함양군민대운동회를 집행하였다. 뒤이어 학교 체육이 정상화되면서 함양 체육은 새롭게 발전하게 되었다. 1961년 10월 10일 사단법인 함양군체육회가 창립되었고, 초대회장으로 노상용 함양소춘양조장 대표가, 부회장으로 도석균 함양군 재건국민운동 지회장과 김창환 위남양조장 대표가 활동하였으며, 상임이사에는 김재도, 총무는 양갑용이 맡았다. 1962년에는 9월 17일 「국민체육진흥법」이 제정·공포되고 대한체육회가 법적기반을 통해 전국체육회 조직이 재정비되었고, 이에 따라 함양군체육회도 노상용이 회장으로 임명되어 함양군체육회를 이끌었다. 1962년에는 우리나라 체육 발전을 위한 조치로서 각 도별 단위의 도민체육대회를 개최하도록 대한체육회의 지침이 내려왔고, 그 결과 경상남도에서도 1962년 5월 20일부터 22일까지 제1회 경상남도 도민체육대회가 부산에서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 함양군은 축구 종목에만 출전하였고, 공동우승으로 기념비적인 성적을 거두었다.
[현황]
최근에는 다양한 체육 및 스포츠 종목이 각 학교와 생활체육 종목으로 함양군에 소개되었고, 이 때문에 함양군 내의 학교 체육과 동호인 체육으로 배구, 테니스, 게이트볼, 태권도, 궁도, 족구, 탁구, 야구, 검도 등의 종목에 많은 군민들이 참가하고 있다. 함양군에서는 함양군체육회와 함양군 생활체육회가 설립되어 함양군 체육을 대표하는 조직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함양군체육회의 경우에는 군수가 당연직 회장이 되어 체육 종목별 단체가 설립되어 운영되었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조직이 잘 운영되지 않고, 젊은 선수들이 다른 시와 광역 지역으로 이탈하는 사례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양군은 도민체육대회 군부에서 종합우승을 여러 번 하기도 하였다. 또한 1992년 11월 설립된 함양군 생활체육협의회는 12개 협의회와 63개 동호인 클럽이 활동을 하였고, 종목별·지역 단위별 회원 1,3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2017년 기준 함양군체육회 고문단을 비롯해 자문위원, 부회장단, 이사 등 임원 수 120여 명이 함양군의 체육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으며, 함양군 육상연맹을 비롯하여 축구협회, 야구협회, 테니스협회, 정구협회, 농구협회, 배구협회, 탁구협회, 사이클연맹, 복싱연맹, 씨름협회, 유도회, 검도회, 궁도협회, 배드민턴협회, 태권도협회, 볼링협회, 골프협회, 인라인롤러, 보디빌딩협회, 바둑협회 등 21개 종목의 가맹단체가 함양군체육회에 소속되어 함양군의 종목별 체육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