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북도 경산시 중방동에 있는 고려 후기 관학 교육 기관. 경산향교(慶山鄕校)는 고려 후기에 경상도 경산현(慶山縣)에 건립된 공립 교육 기관이다. 1390년(공양왕 2) 건립되었으며, 대성전, 동무, 서무, 내삼문, 명륜당, 동재, 서재, 외삼문 등을 갖추고 있다. 경산향교는 경산시청 남쪽 맞은편의 낮은 구릉 위에 위치한다. 서쪽은 시내이며, 동쪽에...
-
고려 후기 경산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경산군(慶山郡)은 1308년(충선왕 복위 1) 충선왕이 복위하면서 왕의 이름을 피휘(避諱)하기 위해 기존의 장산군(章山郡)을 고친 것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압량읍과 동 지역 일부, 대구광역시 수성구 일부를 관할하였다. 1308년 충선왕이 복위하자 기존 장산군의 ‘장(章)’이 왕의 이름인 ‘장(璋)’과 발...
-
경상북도 경산시에 있는 팔공산의 문화유산과 문화적 가치 재조명. 팔공산(八公山)은 경상북도에서 관리하는 팔공산도립공원과 대구광역시에서 관리하는 팔공산자연공원으로 구분된다. 팔공산의 지리적 범위는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하양읍, 칠곡군 가산면, 군위군 부계면, 영천시 신녕면·청통면과 대구광역시 동구에 걸쳐있다. 팔공산의 총면적은 경상북도가 90.242㎢, 대구광...
-
고려 후기부터 1895년까지 경상북도 경산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경산현(慶山縣)은 1317년(충숙왕 4) 기존의 경산군(慶山郡)을 승격시키면서 처음 설치되었다.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동 지역[신천동·남방동·내동·여천동·유곡동·점촌동 제외]과 남천면, 압량읍 북부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신매동·삼덕동·성동·연호동·고모동·시지동·매호동·사월동·가천...
-
918년부터 1392년까지 경상북도 경산 지역의 역사. 고려 시대 경산 지역에 두어졌던 지방 행정 구역으로는 장산군(章山郡)[경산군(慶山郡)], 하주(河州)[하양현(河陽縣)], 자인현(慈仁縣)과 구사부곡(仇史部曲)·안심소(安心所)·양량촌부곡(陽良村部曲)·이지부곡(貍只部曲)·이지은소(梨旨銀所)가 있었다. 이 가운데 장산군은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동(洞) 지역 서부와 남천면, 압량읍...
-
고려 시대부터 1653년까지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구사부곡(仇史部曲)은 원래 신라 때 장산군(獐山郡)의 영현이었던 여량현(餘粮縣)이었다. 고려 초 940년(태조 23)경 구사부곡으로 강등되었으며, 1658년(효종 9) 자인현(慈仁縣)에 합속되었다. 관할 구역은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일대이다. 여량현이 고려 전기 구...
-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산전리에 있는 삼국 시대 산성 터. 금성산성의 정확한 축조 시기는 문헌에 전하지 않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산현(驚山縣) 고적조(古蹟條)의 “금성은 현의 남쪽 70리에 있다. 석축으로 주위 2,155척인데, 지금은 폐성되었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조선 시대 이전에 축조한 성이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성안 북쪽 사면...
-
고려 후기 경산군에 봉해진 문신. 김이(金怡)[1265~1327]는 원나라 간섭기 때 활동한 문신이자, 춘양 김씨(春陽金氏) 가문의 시조이다. 충렬왕과 충선왕 부자간의 갈등과 입성 책동(立省策動)을 막아내는데 공을 세웠다. 1320년(충숙왕 7) 경산군(慶山君)에 봉해졌다. 김이의 본관은 춘양(春陽), 자는 열심(悅心)·은지(隱之), 호는 산남(山南)이다. 초...
-
삼국 시대 경상북도 경산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신라의 지방 행정 구역. 노사화현(奴斯火縣)은 본래 압량국(押梁國)[혹은 압독국(押督國)]의 일부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신라 지미왕(祗味王)[재위 112~134]이 정벌하였고, 이후 압량군[혹은 압독군]의 영현으로 처음 설치되었으며, 757년(경덕왕 16) 자인현(慈仁縣)으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경상북...
-
경상북도 경산시에 건립된 누정과 정자. 누정(樓亭)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일컫는 말로 주로 자연경관이 좋은 곳에 마룻바닥을 지면보다 한층 더 높게 지은 다락집을 가리킨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누정조에서는 누(樓)·정(亭)·당(堂)·대(臺)·각(閣)·헌(軒)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전통 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누정 건립의 주체는...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동서리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각. 동서리 효자각(東西里孝子閣)은 조선 전기 효자 윤인후(尹仁厚)[?~?]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정려각이다. 후에 신휴(申休)[?~?]와 허중견(許仲堅)[?~?]의 효자비를 함께 수습하여 현재는 3개의 효자비가 모셔져 있다. 윤인후의 행적은 자료의 소략으로 명확하게 알 수 없으나, 아홉 살 때 아버지...
-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구일리에 있는 절터. 밀암사 터는 동학산(動鶴山)[603m] 기슭에 밀암사(密岩寺)가 있던 터이다. 밀암사는 조선 전기까지 유존한 것으로 보이나 창건 및 폐사 시기를 알 수 없다. 밀암사 터에서 발견된 유물이나 유구는 없으며, 절터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심천사(深泉寺), 망월사(望月寺), 구주사(...
-
조선 시대 경산 지역에 설치된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 시설. 봉수(烽燧)는 전통 시대 때 불과 연기를 이용해 외적의 침입과 같은 긴급한 상황을 알리는 통신 시설이다. 낮에는 연기를 올리기에 ‘봉(烽)’, 밤에는 횃불을 통해 통신하기에 ‘수(燧)’라고 한다. 각 봉수의 거리는 수십 리에 이르며, 봉수대는 산 정상에 설치되었다. 우리나라 봉수의 기원은 삼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
고려 시대 경산 지역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구역. 고려 시대 향(鄕)·소(所)·부곡(部曲)·장(莊)·처(處) 등의 부곡제(部曲制) 영역은 지방제도 하에서 주(州)·부(府)·군(郡)·현(縣) 등의 하부구조였다. 이 가운데 향·부곡은 주로 농업에 종사하는 지역으로 고대부터 존재하였지만, 수공업 생산 등을 담당했던 소를 비롯한 장·처 등은 고려 시대 이후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파...
-
고대부터 현대까지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서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며 수행하는 종교.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 불교가 보급되면서 처음 건립된 사찰은 491년(소지왕 13)에 극달화상(極達和尙)이 창건한 선본사(禪本寺)이다. 극달화상이 동화사(桐華寺)를 창건한 것은 이보다 2년 후인 493년(소지왕 15)으로, 선본사가 동화사 보다 먼저 창건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통일 신라...
-
조선 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효자. 손일선(孫日宣)[?~?]은 경상도 경산현(慶山縣) 출신이다. 역질(疫疾)이 돌고 있는 중에도 삼년상을 지극정성으로 치러 세종 연간에 정려(旌閭) 되었다. 손일선은 천성이 효성스러웠다. 어느 해 집안에 역질이 발생하여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한 해가 되지 않은 시점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역질을...
-
고려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왕비. 순비 노씨(順妃盧氏)는 남편인 정창부원군(定昌府院君) 왕요(王瑤)가 공양왕[재위 1389~1392]으로 등극하자 왕비가 되었다. 경산현(慶山縣)은 왕비의 고향이라 경산군(慶山郡)으로 승격하였다. 순비 노씨의 본관은 교하(交河)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의열공(懿烈公) 노영수(盧潁秀), 할아버지는 강평공(康平公) 노책(盧頙),...
-
경상북도 경산시 점촌동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절터. 신림사(新林寺) 터는 통일 신라 시대 원효대사(元曉大師)[617~686]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신림사가 있던 터이다. 신림사의 창건 당시 이름은 금당사(金堂寺)였으나 1620년(광해군 12)에 ‘신림사’로 개칭하였다. 17~18세기에 번성하였던 신림사는 19세기부터 쇠락하기 시작하였고, 일제 강점기까지...
-
조선 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효자. 신휴(申休)[?~?]는 경상도 하양현(河陽縣) 출신의 효자로 조정에 의해 정려(旌閭)되었다. 신휴의 효행은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에 수록되어 있으며, 효자각(孝子閣)이 세워져 있다. 신휴의 본관은 평산(平山)으로,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가계나 활동 시기는 전하...
-
선사 시대부터 현재까지 경상북도 경산 지역의 역사. 팔공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으며 금호강이 관통하는 경산은 고대 압독국(押督國)의 문화가 꽃피웠던 곳이다. 삼국 통일 과정에서는 신라의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고승(高僧) 원효(元曉)가 배출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삼국유사(三國遺事)』를 편찬한 일연(一然)이 경산에서 탄생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경산현(慶山縣)·하양현(河陽縣...
-
조선 시대 경산 지역에 설치되었던 관영 교통·통신 및 숙박 시설. 역(驛)은 국가의 명령과 공문서의 전달, 변방의 긴급한 군사 정보 및 외국 사신 왕래에 따른 영송(迎送)과 접대, 그리고 공공 물자의 운송 등을 위하여 설치된 교통 통신기관으로 삼국 시대부터 존재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도로망과 역참제가 더욱 발전 정비되어 22개의 역도(驛道)에 525개의 역참이 설치되었다. 고려 시...
-
조선 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효자. 윤인후(尹仁厚)[?~?]는 조선 태종 연간의 효자로 정려(旌閭)되었으며, 윤인후를 기리는 효자각(孝子閣)이 남아 있다. 윤인후는 태종 연간 경상도 하양현(河陽縣)에 살았다. 9세 때 부모상을 당하여 묘막을 지키고 있었는데, 한밤중에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윤인후를 잡아먹으려 하였다. 이에 윤인후는 호랑이에게 자기는 이...
-
고려 시대 경상북도 경산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이지은소(梨旨銀所)는 영주(永州)[지금의 경상북도 영천시]의 속현(屬縣)이었다. 그러나 고을 사람들이 국가의 명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백성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이지은소로 강등되었다. 이지은소는 현재의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과 영천시 신녕면·청통면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시대 소(所)를 포함한 부곡...
-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경상북도 경산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이지현(梨旨縣)은 영주(永州)[지금의 경상북도 영천시]에 예속되었던 이지은소(梨旨銀所)가 1335년(충숙왕 복위 4)에 승격한 것이다. 현재의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과 영천시 신녕면·청통면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지현은 고려 시대 영주에 속했던 은소(銀所)였다. 그러다...
-
757년부터 1895년까지 경상북도 경산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자인현(慈仁縣)은 757년(경덕왕 16) 노사화현(奴斯火縣)을 개칭하여 설치되었다.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남산면·용성면과 진량읍 남부 지역을 관할하였다. 별호는 ‘기화(基火)’ 또는 ‘인산(仁山)’이다. 자인현은 757년 군현제(郡縣制)를 강화하고, 명칭을 한자식으로 아화(...
-
940년경부터 1308년까지 경상북도 경산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고려 시대의 지방 행정 구역. 장산군(章山郡)은 원래 통일 신라 시대 때 장산군(獐山郡)이 940년(태조 23)에 변경된 것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압량읍과 동 지역 일부, 대구광역시 수성구 일부를 관할하였다. 신라왕조의 멸망과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신라의 지방 제도는 해체되었다. 따라서 고려...
-
고려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문신. 전백영(全伯英)[1345~1412]은 1371년(공민왕 20) 문과에 급제하였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주로 간관으로 활약하였다. 전백영의 본관은 옥산(玉山)[경산(慶山)], 호는 파계(巴溪), 시호는 문평(文平)이다. 등과록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전억령(全億齡), 아버지는 전명도(全明道)이며, 어머니는 남원 양씨로...
-
고려 후기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 정착한 문신. 정연(鄭珚)은 1347년(충목왕 3)의 정치도감(整治都監) 개혁에 참여한 문신이다. 외삼촌인 채하중(蔡河中)의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경산현으로 유배되었다. 정연의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맹순(孟淳), 시호는 양헌(良獻), 봉호는 팔천(八川)이다. 할아버지는 첨의 평리(僉議評理)를 지낸 정선(鄭僐), 아버지는 보...
-
1392년부터 1863년까지 경상북도 경산 지역의 역사와 문화. 현재의 경산은 조선 시대 경산현(慶山縣)·하양현(河陽縣)·자인현(慈仁縣)으로 나뉘어 있었다. 고려 시대에 세 현은 경주부의 속현으로 있었지만 조선이 건국되면서 경산과 하양은 독립현이 되었다. 하지만 자인은 1637년(인조 15)까지 경주부의 속현으로 남아있었다. 경산·하양·자인은 현으로서는 규모가 작았기에 하양은 안심...
-
경상북도 경산시에서 행해지는 신앙 행위의 총칭. 경산 지역은 최초의 정치 집단인 압독국(押督國)이 세워졌을 때부터 원시 종교 활동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 시기 종교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유적이나 유물 등 자료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아 종교 활동에 대해 명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이후 경산 지역에 남겨진 종교 유적이나 배출된 인물을 보면 경산...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교리에 있는 조선 시대 관학 교육 기관. 하양향교(河陽鄕校)는 조선 시대 경상도 하양현(河陽縣)에 두었던 공립 교육 기관이다. 고려 후기 또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을 갖추고 있다. 하양여자중학교 옆을 지나는 지방도 제919호를 따라 남쪽으로 600m 가량 떨어...
-
1018년부터 1895년까지 경상북도 경산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하양현(河陽縣)은 고려 초 하주(河州)였다. 1018년(현종 9) 하양으로 개칭하고 현이 되었다.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와촌면과 진량읍 북부 지역, 그리고 대구광역시 동구 각산동·괴전동·동내동·매여동·신서동 일대를 관할하였다. 고을 이름인 ‘하양’은 금호강이 굽이쳐 흐르는 북쪽에 자...
-
고려 전기 경산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하주(河州)는 사료상 불분명하지만 대체로 고려 초부터 1018년(현종 9) 하양현(河陽縣)으로 개칭되기까지 설치되었다.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와촌면과 진량읍 북부 지역, 그리고 대구광역시 동구 일부 지역을 관할하였다. ‘하주’라는 지명이 언제 생겼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런데 하주에 자사(刺史)가 설치된 것은...
-
조선 전기 하양이 관향인 문신. 허계(許誡)[?~1502]는 문과 급제 후 홍문관 부제학(弘文館副提學)·밀양 부사(密陽府使)·형조 참의(刑曹參議)·경주 부윤(慶州府尹) 등을 지냈다. 허계의 본관은 하양(河陽)이다. 아버지는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를 지낸 허척(許倜), 어머니는 정언(正言)을 지낸 고안승(高安勝)의 딸 정부인(貞夫人) 고씨(高氏), 할아버지는 판...
-
조선 전기 하양이 관향인 문신. 허성(許誠)[1382~1442]은 문과 급제 후 병조 좌랑(兵曹佐郎)·지평(持平)·이조 판서(吏曹判書) 등을 지냈다. 허성의 본관은 하양(河陽), 자는 맹명(孟明), 호는 신암(愼菴), 시호는 공간(恭簡)이다. 아버지는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지낸 허주(許周), 어머니는 정부인(貞夫人) 합천 이씨(陜川李氏), 할아버지는 판도...
-
조선 전기 하양이 관향인 문신. 허주(許周)[1359~1440]는 고려 말 지양주사(知襄州事)로 있으면서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성을 쌓았고, 이성계(李成桂) 일파의 전제 개혁에 참여하였다. 조선 개창 후 여러 관직을 역임했으며,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에 오른 후 관직을 그만 두었다. 허주의 자는 백방(伯方)·백공(伯公), 호는 숙재(肅齋), 시호는 간숙(簡肅)...
-
조선 전기 하양이 관향인 문신. 허척(許倜)[?~?]은 조선 초 서북면 행대 감찰(西北面行臺監察)·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형조 참의(刑曹參議) 등의 관직을 지낸 문신이다. 허척의 본관은 하양(河陽)이다. 아버지는 판도 판서(版圖判書)를 지낸 허귀룡(許貴龍), 어머니는 통례문 부사(通禮門府使)를 지낸 이길(李吉)의 딸 흥양 이씨(興陽李氏), 할아버지는 도관 정...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사기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건립된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의 말사. 환성사(環城寺)는 835년(흥덕왕 10)에 창건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의 말사이다. 현재 경상북도 경산시 사찰 가운데 가장 많은 지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사찰이 주변 산들에 둘러싸여 있는데, 그 형세가 고리 같다고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