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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월리의 어제와 오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A010103
한자 雪月里-
지역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설월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학

설월리는 광명시의 진산인 구름산을 등지고 그 앞으로 안양천이 흘러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마을이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설월리 주민들은 소하동 너른 벌판을 일구며 멀리 관악산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이곳은 또 예전부터 안산과 시흥 사람들이 서울에 가려면 반드시 경유해야 했던 교통의 요충지였다. 그만큼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산세와 부족하지 않은 물자가 생산되어 제법 큰 마을을 이룰 만한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추었던 셈이다.

[소하리의 자취를 살피다]

조선 후기까지 소하동시흥군 서면에 속했다. 1765년(영조 41)에 발간된 『여지도서(輿地圖書)』 방리(方里) 조에 수록된 시흥군 서면을 설명하는 내용에 소하리, 가리대리, 일직리 등의 지명이 나온다. 여기서 소하리는 현재의 소하2동, 가리대리는 소하1동, 일직리는 일직동을 지칭한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 방리 조에도 시흥군 서면을 설명하는 내용에 가리대소하리, 일직리 등의 지명이 보인다. 이후 1843년(헌종 9)에 간행된 『경기지』와 1899년(고종 36)에 간행된 『시흥군읍지』에도 같은 내용으로 시흥군 서면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1871년(고종 8)에 간행된 『시흥현읍지』에는 오늘날의 소하동 인근 지역이 그려진 지도가 수록되어 있기도 하다.

조선 후기 시흥군 서면 소하리의 조그만 마을에 불과했던 설월리서면의 중심지로 자리 잡은 것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조치로 시흥군 남면과 서면시흥군 서면으로 통합된 이후 설월리서면사무소와 경찰관 주재소, 서면공립보통학교[현 서면초등학교]가 세워진 것이다.

이렇듯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설월리서면 주민들의 생활 중심지로 자리 잡았고, 이에 따라 지금도 광명 지역에서 살고 있는 나이 드신 분들은 삶의 일부분이나마 공통된 기억으로서 번화했던 설월리를 추억하고 있다. 설월리가 한때 서면의 면소재지였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 토박이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1964년 시흥군의 행정리 확장안에 따라 소하리는 다시 4개리로 구분되었다. 당시의 편제를 보면 소하1리는 가리대, 소하2리는 신촌·한내, 소하3리는 설월리·40동 마을, 소하4리는 오리동·작은말·70동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또 1970년대에는 소하5리를 두어 영당말을 포함시켰다. 1979년 서면이 소하읍으로 승격되면서 소하리는 다시 소하1리, 소하2리, 소하3리로 개편되었다. 소하2동주민센터는 일제강점기 서면사무소가 있던 곳에 들어서 있는데, 이곳은 1979년 잠시 서면 소하읍사무소가 되었다가 1981년 7월 1일 광명시 승격과 동시에 소하2동사무소가 되었다.

1981년 광명시가 개청된 뒤 소하1리와 소하2리는 소하1동으로, 소하3리와 인근 일직리 전부는 소하2동으로 각각 편제되었고, 이후 설월리소하동의 중심 마을이 되었다. 그러나 1971년 이후 그린벨트로 묶인 지역이 많은 탓에 주변 지역보다 낙후되면서 이전의 활기를 잃어버린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 덕분에 옛 마을의 정취가 많이 남아 있다고는 하나, 이것 역시 그린벨트로 묶인 주민들의 한숨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리 이원익 대감이 눈 내리는 밤길을 산책하던 곳]

설월리는 ‘큰말’ 또는 ‘큰설월리’라고도 불리는데, 이런 이름이 붙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설이 전해 온다. 먼저 오리 이원익 대감이 관직에서 물러나 현재의 ‘작은말’에 살았는데, 그 나이 많은 재상(宰相) 일가가 어찌나 근면하던지 달빛 아래서도 지금의 설월리 농토에서 호미로 김을 매고 일을 했다고 하여 서월리로 불렸다는 것이다. 즉, ‘호미 서(鋤)’에 ‘달 월(月)’을 붙여 마을 이름으로 삼은 것으로, 지금은 ‘서러리’로 변음되어 불리고 있다. 실제로 설월리 주민들 중에서 설월리를 ‘서러리’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는 이원익 대감이 눈 내리는 밤에 이곳을 걸으며 사색에 잠기곤 해서 ‘설월리(雪月里)’로 불렀다는 것이다. 산자락에 내린 달빛 어린 설경이 그만큼 아름다웠다는 의미이리라.

참고로 현재 ‘작은말’ 혹은 ‘영당말’이라 불리는 오리동은 오리 이원익 정승의 영정을 모신 영당(影堂)이 있는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작은설월리’라고도 부른다.

[정보제공]

  • •  최문락(남, 1939년생, 소하2동 설월리 주민, 동정자문위원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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