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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직동 양지편 당고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1374
한자 日直洞-堂告祀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양지편마을
집필자 김덕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신앙|마을신앙
의례시기/일시 음력 10월 초사흘
의례장소 당두골
신당/신체 향나무

[정의]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양지편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일직동 양지편 당고사는 매년 음력 10월 초사흘에 마을 뒤편에 있는 당두골에서 양지편[호봉골·새터말·동촌말·모퉁말·양달말·구석말 등 6개의 자연 마을]의 안녕과 가축의 번성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신당/신체의 형태]

마을 뒤편에 위치하고 있는 당두골의 향나무이다.

[절차]

1993년 광명시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광명시지』에 의하면, 제관은 제를 지내기 보름 전에 마을 회의에서 선발한다. 마을 회의에서는 제관 외에도 음식을 장만하는 당주, 축문을 낭독하는 축관을 선정한다. 당주·제관·축관 등은 부정하지 않은 사람으로 뽑고, 제사 음식을 장만하는 당주는 한 가구를 선발하여 이 집에서 모든 음식을 마련한다. 만약 당주 집에 부정한 일이 생기면 당고사를 연기하며, 마을에 상이 나면 그 달을 넘긴 음력 11월 3일에 제를 모시게 된다.

당주·제관·축관 등의 집에는 황토를 뿌려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고, 이 사람들은 상이 나도 상가에 가서는 안 되며, 매일 목욕재계하고 부정한 일을 피하도록 근신해야 한다. 경비는 통장의 지시에 따라 반장이 1992년 현재 가구당 3,000원 내지 5,000원 정도를 추렴하나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제외한다. 1931년 추렴금 장부에는 20전을 거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모인 경비를 가지고 통장과 당주집 안주인은 안양장에서 제물을 마련해 온다. 제물은 사과, 배, 감, 밤, 대추, 부침개, 산자, 과자, 조기, 돼지머리, 시루떡, 햅쌀 2그릇, 북어 등이다. 1992년에는 제물 준비로 53만 원이 소요되었다.

당주는 당고사 3~4일 전에 제당에 올라가 청소를 하고, 하루 전에는 누룩을 빚어 술을 담근다. 평상시에 빚은 술은 3일이 경과해야 숙성하지만 당고사에 올리는 조라술은 하룻밤만 지나도 신기하게 잘 익어 맛이 좋다고 한다. 깊은 밤 당주 부부는 술항아리를 가지고 제당에 올라가 당 근처의 땅에 술독을 묻고 내려온다. 이때 반드시 남편이 앞장서서 가고, 부인은 떨어져 술독을 인 채 따르지만 부부간에 말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이날 저녁에는 마을 사람들이 당주 부부가 올라가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에게 통행 금지령을 내리고, 일부러 깊은 밤 시각을 이용하여 당주는 산에 오른다.

당고사 지내는 날, 저녁 7시 경에 부정하지 않은 마을 사람들은 모두 산에 올라 당고사에 참여한다. 당고사에 쓰이는 음식은 당주 집에서 부정하지 않은 아낙네들이 모여 만든 음식으로 마을 청년들이 이 음식을 당까지 운반하고 차일을 친 후 제의는 비로소 시작된다. 제물이 진설되면 떡을 시루 채 올린다. 또한 시루에는 실타래를 감은 북어 2마리를 올린다. 제의 순서는 재배(再拜)를 하고 헌주(獻酒), 축문(祝文), 소지(燒紙)를 호수만큼 올리며 가정의 평안과 복택을 빈다.

[부대행사]

제의가 모두 끝나면 당 주변에 술을 뿌리고, 당의 표식이 되는 향나무에 실을 감은 북어 한 마리를 묶어 두고 내려온다. 이어서 마을 사람들은 당주집에 모여 음식을 먹으면서 결산 모임을 갖는다.

[축문]

축문은 대체로 산왕대신(山王大神)에게 풍년을 감사하고, 마을 사람과 마을에서 기르는 가축의 번성을 감사하며 음식을 올리니 기쁘게 받아달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현황]

KTX 광명역 주변에 있던 양지편마을광명역이 들어서면서 주거지를 옮겨야 했다. 2010년 현재 광명역 부근에 건설 중인 이주 단지가 모두 완공되면 다시 주민들이 분양을 받아 모여들겠지만 현재는 각지에 흩어져서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도 당고사만은 정성을 다해 지내고 있다. 2009년에도 성채산(城砦山)에 올라가서 제를 지냈다. 일직동 양지편 당고사는 과거 무당이 참여하는 큰 규모의 제사였으나 6~7년 전부터 마을의 규모가 축소되어 무당은 불러오지 않았다고 한다. 예전에는 소도 잡고 음식도 많이 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소 대신 돼지머리를 올린다.

[참고문헌]
  • 『광명시지』 (광명시지편찬위원회, 1993)
  • 인터뷰(성채산 황룡사 거주 강명숙, 여, 53세, 2010.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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