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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온사동 능말 산신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1368
한자 老溫寺洞-山神祭
영어의미역 Sacrificial Rite for the Moutain God in Neungmal, Noonsa-dong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능말
집필자 김덕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신앙|마을신앙
의례시기/일시 단오|음력 10월 2일
의례장소 구름산 기슭지도보기
신당/신체 당집

[정의]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능말에서 개인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노온사동 능말 산신제는 매년 단오와 음력 10월 2일에 구름산 산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단오 때의 산신제는 마을의 안녕을 빌고 농사 중간의 휴식 성격이 강한데 반해 10월의 산신제는 개인의 안녕을 비는 기복적 성격이 강하다. 단오 때는 낮 시간에 이루어지나 10월 제사 때는 밤 10시 경에 이루어진다.

노온사동 능말 산신제는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10월 제사 때는 저녁에 당주 집에서 떡을 쪄서 등불을 들고 제당에 올라가 제를 지내고 당주 집에 내려와 음복을 하였다. 제물로는 소머리, 고사떡[붉은 설기], 통북어, 사과, 배, 밤, 대추, 삼색 나물, 삼색전, 막걸리, 삶은 국수, 탕국, 청수 등이 차려진다.

제비는 마을 공금으로 충당한다. 과거에는 집집마다 벼를 거두어 ‘장래 돈’을 놓아 그 이자를 모아서 사용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과거란 1950년 이전을 말한다. 아방리 동제는 6·25전쟁을 전후로 하여 변했기 때문이다. 6·25전쟁 이후에는 오늘날과 같이 점차 변하였다. 예전부터 동제를 지낼 때 기록해 둔 문서들이 많았는데 언제인지는 모르나 전부 소실되었다.

[연원 및 변천]

예전에는 매년 음력 10월 2일 0시에 지내왔다. 그러다가 2001년 무렵에는 저녁 8시 경에 지냈으며, 최근에는 오전 8시에 산제를 지낸다. 사람들의 편의나 사정에 따라 제를 지내는 시간이 변했다. 신당도 나무에서 당집으로 바뀌었다. 제관 선정이나 제의에 따른 금기, 신성 구역 표시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시대가 내려오면서 간소화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제당은 애기능저수지구름산 산기슭에 있다. 원래 산제당에는 ‘고사나무’라고 불리던 아름다운 노송(老松)이 있어 그곳에서 제를 지냈는데 6·25전쟁 무렵 노송이 없어지자 지금의 당(堂)을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에 어느 배타적 종교인이 당집의 문과 당 안에 모셔 놓은 신위와 제상을 파괴하여 당으로서의 기능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몇 번을 다시 설치해 놓았으나 번번이 파괴되었다. 따라서 2007년 무렵부터는 영회원 앞 느티나무에서 산제를 지내고 있다. 2001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행한 『경기도 세시풍속』을 보면, 6·25전쟁 때 주민 한 사람이 노송을 베어 팔아서 지금의 위치에 제당을 지었다고 하며, 제당 안에는 제상과 신위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절차]

요즘에는 노인회 회장과 총무 및 노인 몇 사람이 제관으로 참여하여 제를 지낸다. 과거에는 마을에서 노인 중 깨끗한 사람을 선정하였다. 부인이 생리 중이거나 아이들이 있는 사람은 피하다 보니 대개 나이 많은 사람을 선출하였다. 9월 25일 마을 회의에서 당주 한 사람과 당주를 도와줄 사람을 뽑는다. 당주로 선정되면 상가에도 가면 안 된다. 당주를 선출하여 그 집에서 음식을 장만한다.

산신제를 지내기 일주일 전에 당주는 산제당 위에 있는 약수터에서 물을 길어 조라를 담가 고사나무 밑에 묻어 놓으며, 목욕재계를 한다. 당주 집에는 대문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깐다. 마을 입구에도 황토를 깔아 외부인들의 출입을 금한다. 만약 외부인이 금지된 날에 마을에 들어오면 제를 지내기 전에는 마을을 나가지 못하게 했다. 만약 당주를 선정한 후에 마을에 부정이 끼면 해를 넘겨 다음 해 정월 초이틀에 산제를 지낸다. 당주 집에 부인의 월경이 있거나 그 집의 개가 새끼를 낳아도 제를 지내지 않았다. 마을에 상을 당하거나 출생하는 아이가 있어도 제를 지낼 수 없었다. 과거에는 이렇게 금기가 무서웠다. 요즘에도 마을에 부정이 있으면 해를 넘겨서 다음 해에 제를 지낸다.

제를 지낼 때는 당주와 축관 및 제관 몇 명이 간다. 제관들은 진설을 하고 제복을 입는다. 먼저 강신주를 올리고 초헌을 한 후 재배를 하고 축문을 읽는다. 다시 아헌을 하고 재배를 한 후 종헌을 하고 재배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소지는 사르지 않는다. 산제가 끝나면 신위와 축문을 소한다. 또한 북어와 떡 조각, 밤, 대추, 소고기를 조금 떼어서 나무에 묶어 둔다. 생활이 어려운 시절에는 이것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새벽같이 올라가서 가져다 먹었다. 제물은 음복을 하고 집집마다 나누어 준다.

[참고문헌]
  • 『경기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 인터뷰(노온사동 아방리 민속보존회장 양승옥, 남, 55세)
  • 인터뷰(학온동 능촌마을 노인회 회장 양주옥, 남, 79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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