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456 |
---|---|
한자 | 金大成墓 |
영어의미역 | Tomb of Gim Daese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자경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만용 |
성격 | 능묘 |
---|---|
건립시기/일시 | 조선 후기 |
관련인물 | 김원록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자경리 |
[정의]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자경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대성의 묘소.
[개설]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자경리는 광산김씨 돈녕공파와 소봉공파 후손 50여 세대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던 마을이었으나 후에 덕안리, 궁촌, 새터말 등이 새로 형성되면서 90여 호의 마을을 이루었다. 1950~1960년대에는 새마을운동, 4H 활동을 통하여 지붕 개량, 부엌 개선,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공동 상점, 정미소, 이발소, 목욕탕, 유치원 등을 운영하였다. 그 후 1970년대에는 그린벨트로 묶이고,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정부의 공공사업으로 서부간선도로와 제2경인고속도로, KTX 광명역세권 개발 등으로 80여 호가 수용되고 현재는 10여 호의 가구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자경리는 조선 중기부터 금천현 사경촌(士敬村)으로 불렸으나, 일제강점기에 ‘사(士)’를 자(自)로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
김대성(金大成)[1574~1636]은 본관이 광산(光山), 자는 집부(集夫)이다. 할아버지는 김종(金綜), 아버지는 동지돈녕부사 김원록(金元禄), 어머니는 원주원씨로 직장 원국량(元国良)의 딸이다. 1594년(선조 27)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609년(광해군 1) 증광시 문과에 병과 23인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 이조정랑에 이르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적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광산김씨 대종중 정묘보[1747]와 병자보[1876]에는 김원록, 김대성, 김대덕의 묘지가 금천현 사경산(士敬山)으로 표시되어 있다.
[위치]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자경리[금천 사경산 해좌]에 있다. 아버지 김원록, 김대성, 김대덕(金大徳)의 묘지가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자경리에 함께 있다.
[의의와 평가]
김원록은 오리 이원익과 동시대 관료로서 절친한 사이였고, 훌륭한 선비로 전해온다. 이원익의 『오리집(梧里集)』에 의하면 김대덕을 훌륭한 관리로 칭찬하였고, 또한 김대덕의 임지로 특별히 선물을 하고 격려하였다 하며, 김대덕이 시묘살이를 할 때 이원익이 직접 찾아와 위로한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