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총수
-
경기도 광명시에 속하는 법정동. 가학동은 자연마을인 가골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마을 지형이 학이 날개를 펼친 모양과 같아 붙인 지명이라는 설과, 학이 마을을 둘러싼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전한다. 가골은 달리 가곡(駕谷), 원가학(元駕鶴)으로도 불린다. 가학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하여 금과현...
-
경기도 광명시에 속하는 법정동. 노온사동은 마을에 있었다고 전해 오는 노온사(老溫寺)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노온사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 달 뒤 과천을 다시 설치하면서 금천과 양천(陽川)을 병합해 금양현(衿陽縣)이 되었고, 1416년(태종 16) 경기도·충청...
-
경기도 금천현·시흥현·시흥군에 있던 행정구역. 서면은 현재의 경기도 광명시 전역에 해당하던 지역이다. 1914년 남면과 통합하기 이전에는 경기도 광명시의 법정동인 철산동·소하동·하안동·일직동 지역에 해당하고, 남면과 통합한 이후에는 경기도 광명시의 법정동인 광명동·가학동·노온사동을 포함한 지역이다. 조선시대에 금천현(衿川縣) 서쪽에 있었으므로 서면이라고 하였다. 서면은 고려시대 금...
-
설월리는 광명시의 진산인 구름산을 등지고 그 앞으로 안양천이 흘러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마을이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설월리 주민들은 소하동 너른 벌판을 일구며 멀리 관악산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이곳은 또 예전부터 안산과 시흥 사람들이 서울에 가려면 반드시 경유해야 했던 교통의 요충지였다. 그만큼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산세와 부족하지 않은 물자가 생산되어 제법 큰...
-
경기도 광명시에 속하는 법정동. 소하동은 개발 제한 구역이 면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도농 복합 지역이며 최근 소하1동은 소하택지개발사업과 신촌마을 주거지환경개선사업으로 신시가지로 변모 중이다. 조선시대 관아가 있던 현내면의 아랫동네이므로 소하라 하였다. 소하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
-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과 소하동 일부를 관할하는 행정동. 조선시대 관아가 있던 현내면의 아랫동네이므로 소하라 하였다. 소하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 달 뒤 과천을 다시 설치하면서 금천과 양천(陽川)을 병합해 금양현(衿陽縣)이 되었고, 1416년(태종 16) 경기...
-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조선시대 관아가 있던 현내면의 아랫동네이므로 소하라 하였다. 소하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해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 달 뒤 과천을 다시 설치하면서 금천과 양천(陽川)을 병합해 금양현(衿陽縣)이 되었고, 1416년(태종 16) 경기도·충청도·전라...
-
경기도 광명시에 속하는 법정동. 옥과 같은 돌이 산과 들에 많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옥길이라 하였다. 옥길동은 조선시대 인천부 황등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8세기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기록된 황등천면 3리와 황등천면 4리에 해당한다. 『조선지지자료』에는 황등천면 3리에 탄평(炭坪)·식곡(食谷)[일명 식골], 황등천면 4리에는 두길(斗吉)·어연(魚淵)·옥련동(玉蓮洞...
-
경기도 광명시에 속하는 법정동. 조선시대 관아에서 일직선 방향에 있어 일직리(一直里)로 부르다가 일직리(日直里)로 바뀌었다는 설, 정조가 능행할 때 마을 유림들이 일직을 서기 위해 나갔던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전한다. 그늘지는 날이 별로 없고 햇살이 곧게 바로 비치는 마을이므로 달리 양지편이라고도 한다는 설도 있다. 일직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
-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노온사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가학동의 ‘학’자와 노온사동의 ‘온’자를 따서 학온동이라 하였다. 학온동은 고려시대 금천현(衿川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천현은 조선 건국 후인 1414년(태종 14) 과천(果川)을 병합하여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두 달 뒤 과천을 다시 설치하면서 금천과 양천(陽川)을 병합해 금양현(衿陽縣)이 되었고, 1416년(태종 16)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