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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와 놀이가 담긴 강진근씨 댁 집짓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B020106
지역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능말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덕묵

아방리[능말]에는 2009년 현재 70여 호가 살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1990년대 이후 기존의 한옥을 헐고 슬라브집으로 고쳐지어서 이제 한옥은 예닐곱 채 정도만 남아 있을 뿐이다.

아방리[능말] 주민들에 따르면, 예전에 아방리[능말]에 남아 있던 한옥들은 대부분 ‘ㄱ’자형 집이었다고 한다. 소농 경영을 하는 사람들은 한꺼번에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혹은 살림 규모가 나아질 때마다 한 채씩 집을 지어 나간다. 그러다 보면 ‘一’자형 집이 ‘ㄱ’자형이 되고, 더 잘 사는 집의 경우는 ‘ㅁ’자형 집을 짓고 살기도 했다.

[강진근씨의 ‘ㄱ’자형 집짓기]

강진근[1938년생] 씨의 집은 ‘ㄱ’자형 집이다. 강진근 씨는 스물여섯 살 때인 1963년에 결혼해 처음에는 큰형님과 함께 살았다. 분가하기 전 강진근 씨가 살던 집은 ‘왼ㄱ’자형으로, 방이 셋, 부엌이 하나, 우물과 변소, 장독대 등이 딸려 있었다. 안방은 큰형님 내외가 사용했고, 어머니는 건넌방을 썼으며, 강진근 씨 내외는 아랫방을 차지했다.

강진근 씨는 2년 후인 1965년에 형님 집 옆에 조그맣게 ‘목재집’을 지어서 분가해 나왔다. 마침 인근 마을에 사는 사람이 행랑을 팔겠다고 해서 그 집을 헐어다가 밭에 터를 닦고 목재집을 지은 것이다. 행랑을 뜯고 기둥을 옮길 때 같은 마을에 사는 친척들이 많이 도와주었다. 그 중에서도 목수 기술이 있는 강영근 씨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행랑을 뜯어서 부재를 실어 오자 강영근 씨는 집 지을 밭에 가슴 높이로 흙을 쌓아 올리게 했는데, 이는 비탈진 밭의 평형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런 후 터다지기를 했다. 터를 다지지 않고 그냥 집을 들어앉힐 경우 비가 오면 땅이 물러져서 기둥이 쏠려 집이 무너진다. 터를 다질 때는 커다란 둥근 돌 가운데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나무를 넣어서 여섯 갈래로 줄을 맨다. 그 줄을 장정들이 여섯 방향에서 한 가닥씩 잡고 높이 쳐들어서 ‘꽝’ 하고 내리치기를 반복한다. 이것을 지정다지기라고 하는데 장정들은 노동요인 「지정 소리」에 맞춰 돌을 올려다 내려쳤다 한다. 그렇게 하면 동작을 맞출 수 있어서 일이 훨씬 수월하다.

이렇게 터를 다진 뒤에는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운다. 기둥을 놓아 집의 골격이 갖추어진 뒤에는 상량을 올린다. 목수가 자로 재서 가운데에 구멍을 내어 +자로 표시를 한 후 마루칸 가운데에 상량보를 놓고 상량문을 쓴다. 그런 다음 기둥을 올려서 도리에 끼어 맞추고 난 뒤 상량에 실과 북어를 매단다. 상량에 매단 실과 북어는 나중에 미장들이 먹는다. 상량을 올리는 날은 동네잔치가 벌어졌다. 집주인인 강진근 씨는 술과 시루떡을 많이 준비해서 오는 사람들에게 술과 떡을 대접했다.

그때 지었던 목재집은 처음엔 초가였으나, 중간에 초가를 벗겨내고 돌기와를 올렸다. 목재집은 ‘바른ㄱ’자로 지었는데, 방 세 개, 부엌 하나, 축사가 있었다. 그리고 부엌 앞에는 우물이, 마루 뒤에는 장독대가 있었다. 강진근 씨 부부는 안방에 거주했다. 두 딸과 두 아들은 각각 건넌방과 아랫방을 사용했다. 그러다가 강진근 씨가 한창 젖소를 키울 때는 집의 빈 공간에 축사를 지었고, 아들이 사용하는 아랫방 옆에 방을 하나 더 들여서 목부들에게 방을 내 주기도 했다. 그러나 1992년에는 집이 너무 낡자 목재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슬라브집을 지어서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정보제공]

  • •  강진근(남, 1938년생, 노온사동 주민, 금천강씨 종친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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