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3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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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一獨立萬歲運動光明地域發祥地紀念碑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범안로 657[노온사동 361-2]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양철원 |
건립 시기/일시 | 1995년 - 3.1독립만세운동 광명지역 발상지 기념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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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3.1독립만세운동 광명지역 발상지 기념비 - 경기도 광명시 범안로 657[노온사동 361-2] 온신초등학교 |
원소재지 | 3.1독립만세운동 광명지역 발상지 기념비 - 경기도 광명시 범안로 657[노온사동 361-2] 온신초등학교 |
성격 | 기념비 |
관련 인물 | 이정석|최호천|윤의병|유지호|최정성|김인한[김거봉]|최주환 |
재질 | 화강암|오석 |
소유자 | 광명시 |
관리자 | 온신초등학교 |
[정의]
경기도 광명 지역의 3.1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세 운동이 벌어진 옛 노온사리 주재소[현 온신초등학교] 자리에 세운 기념비.
[개설]
3.1독립만세운동 광명지역 발상지 기념비가 세워진 온신초등학교 자리는, 일제의 강권적인 식민지 통치에 항거하여 일어난 1919년 3.1운동 시기 광명 지역에서 독립만세운동의 기치를 처음 올려 민족혼을 빛낸 곳이다. 광명 지역의 3.1운동은 1919년 3월 27일 당시 시흥군 서면 소하리에 거주하는 이정석이 독립운동을 선동한 끝에 이튿날 일본 경찰에게 강제 연행되어 노온사리 경찰 주재소에 구금되면서 비롯되었다. 이정석의 아버지 이종원은 아들의 구금 사실을 기독교인 최호천에게 알렸고, 이에 당시 배재고등보통학교 학생 윤의병, 농민 유지호, 최정성, 김인한[김거봉], 최주환 등은 모임을 가진 뒤 구금자를 구출하고 민족 독립의 염원을 밝히기 위하여 3월 28일 200여 명의 주민이 참여한 가운데 일대 시위 운동을 일으켰다. 시위대들은 대한 독립 만세를 크게 외치며 노온사리 경찰 주재소를 에워싸고 이정석의 구출을 꾀하였으나 증파된 일본 경찰에게 모두 체포되었다. 이들은 치안 유지법 위반 또는 중한 구금자 탈취 미수죄를 적용받고 최고 4년에서 1년 6개월의 징역형과 함께 벌금형을 언도받았다. 윤의병과 최호선 등은 광복된 조국에서 건국훈장 애족장 및 대통령 표창을 추서 받았다.
[건립 경위]
광명시에서 1995년 11월 광복 50주년을 기념하여 3.1독립만세운동 광명지역 발상지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위치]
3.1독립만세운동 광명지역 발상지 기념비는 경기도 광명시 범안로 657[노온사동 361-2]의 온신초등학교 안에 서 있다.
[형태]
몸체는 화강암이고 비문이 새겨진 부분은 오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황]
3.1독립만세운동 광명지역 발상지 기념비의 내용은 최홍규 경기대학교 교수가 짓고 서예가 이금세가 글씨를 썼다. 2002년 국가 현충 시설로 지정되고 2007년 온신초등학교 내 건물 정면 앞에서 운동장 동편 현 위치를 정비하여 이전하였다. 온신초등학교와 인천보훈지청이 결연을 하고 관리는 온신초등학교가 하고 있다. 온신초등학교 앞에는 경기도에서 설치한 독립운동 사적지 안내판이 있다.
2012년부터 3.1독립만세운동 광명지역 발상지 기념비앞에서 매년 광명문화원이 3.1운동 공식 기념식을 주관하여 거행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광명 지역 유일의 독립 운동 유적지로, 국가 현충 시설로 지정되어 광명 시민들의 자긍심과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공간으로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