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15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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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永懷園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유영자 |
[정의]
조선 후기 예조(禮曹)에서 광명 출신의 민회빈 강씨(愍懷嬪 姜氏)에 대해 쓴 글.
[편찬/발간경위]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산141-20번지에 있는 영회원(永懷園)은 광명 지역이 낳은 역사적 인물 민회빈 강씨[1611~1646]의 묘를 말한다. 민회빈 강씨는 우의정을 지낸 강석기(姜碩期)[1580~1643]의 딸로, 조선 제16대 왕인 인조의 맏아들 소현세자[1612년~1645년]의 빈이 되었으나, 병자호란이 끝난 1년 후인 1637년 소현세자와 함께 볼모로 청나라에 갔다가 귀국했다. 그러나 얼마 후 소현세자는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 민회빈 강씨는 인조의 후궁 조소용(趙昭容)의 음모로 세자빈에서 쫓겨났다가 그 다음 해인 1646년 사약을 받았다.
민회빈 강씨는 죽음과 함께 폐서인(廢庶人)이 되어 서민의 신분으로 묻혔다가 1718년(숙종 44) 무고함이 밝혀져서 복위되었고, 복원묘(復元墓)를 만들어 민회묘라 하다가 1903년(고종 40)에 영회원으로 개칭되었다. 『영회원지(永懷園誌)』는 예조에서 민회빈 강씨가 무고와 음모로 억울하게 사약을 받은 내력과, 이후 복위되어 묘소가 영회원으로 개칭되기까지 민회빈 강씨의 생애를 밝히기 위해 적은 글이다.
[서지적 상황]
후손인 강연롱이 소장하고 있다가 왕실도서관 장서각에 위탁 보관하고 있다.
[형태]
1책 35장(張)의 필사본으로, 표제는 ‘영회원지(永懷園誌)’이다.
[구성/내용]
소현세자의 빈으로 볼모로 청나라에 갔으나 활발한 활동으로 조선 여인의 기개를 보였고, 귀국해서는 궁내의 무고로 사사당한 일과 그 후 복원되기까지의 내력을 기록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영회원지』는 역사 속의 한 궁중 여인인 세자빈의 죽음을 통해 궁중 비화를 엿볼 수 있으며, 그녀가 살아갔던 시대적 배경과 한 국가의 비극적인 상황, 궁중 내의 인간관계의 불화가 안쓰러운 교훈을 준다. 한편, 숙종 조를 거쳐 고종 조까지 이어지며 세자빈의 억울함을 밝혀 복위되는 과정은 비록 사후에 이루어진 일이나 역사의 진실을 보게 되어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