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15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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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風謠三選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유영자 |
성격 | 한시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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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인물 | 정원용|유재건|최경흠 |
저자 | 위항 시인(委巷詩人) 305명 |
간행연도/일시 | 1857년 |
권수 | 7권 |
책수 | 3책 |
사용활자 | 활자본 |
소장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
소장처 주소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56-1 103동[관악로 1]|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산60-1[반포대로 201] |
[정의]
1857년(철종 8)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이 서문을 쓴 한시 모음집.
[편찬/발간경위]
조선 후기인 18세기는 신분 질서의 변화가 일어나 중인 계급이 등장하고, 위항 시인들이 대거 출현한 시기이다. 『풍요삼선(風謠三選)』은 직하시사(稷下詩社)의 시동우(詩同友)인 유재건(劉在建)과 최경흠(崔景欽) 등이 1857년에 펴낸 위항 시집이다. 풍요(風謠)는 사대부의 노래인 아(雅)와 다른 ‘민중들의 노래’라는 뜻이다. 원래 1737년(영조 3) 중인들의 시를 모은 『소대풍요(昭大風謠)』가 처음 발간되었고, 그 후 60년이 되던 1797년(정조 21)에 『풍요속선(風謠續選)』이 간행되었다.
이후 60년마다 시집을 간행하는 전통이 생겨, 1857년 『풍요속선』 이후의 위항 시인 305명의 시를 수록하여 간행한 것이 『풍요삼선』으로, 정원용[1783~1873]과 조두순(趙斗淳)·윤정현(尹定鉉)이 서문을 썼다. 1853년 편찬 작업을 시작하여 1857년 겨울에 편집을 완료하여 300여 본을 간행하였다. 당시 『소대풍요』가 세상에 전하지 않고 있어 함께 100여 본을 중간했다고 유재건의 『이향견문록(異鄕見聞錄)』에 수록된 「최경흠전」에 나와 있다.
[형태]
7권 3책의 활자본이다.
[구성/내용]
권1에 51명의 시 111수, 권2에는 18명의 시 117수, 권3에는 11명의 시 107수, 권4에는 29명의 시 94수, 권5에는 34명의 시 100수, 권6에는 89명의 시 162수, 권7에는 73명의 시 195수 등의 총 886수가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에 이르러 상업이 발달하고 신분 제도의 혼란이 오면서 중인들의 위치가 상승했다. 따라서 사대부를 능가하는 경제를 가지고 사대부로서의 정신적 가치를 지향하는 위항 문학인의 활동 역시 활발해졌다. 이 같은 풍조 속에서 『풍요삼선』이 간행됨으로써 문학의 대중화를 이루는 기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