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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사동정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1502
한자 曬史東征日記
이칭/별칭 『동정일기』,『포쇄동정일기』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광명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상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일기
관련인물 정원용
저자 정원용
저술연도/일시 1808년 4월 7일~5월 2일연표보기연표보기
간행연도/일시 1864년 이후연표보기
책수 1책 31장
사용활자 필사본
가로 26㎝
세로 21.5㎝
표제 東征日記
소장처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소장처 주소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134[연세로 50] 연세대학교

[정의]

조선 후기 정원용이 오대산 사고(史庫)를 거쳐 고성군에 다녀온 과정을 기록한 일기.

[개설]

『쇄사동정일기(曬史東征日記)』는 경기도 광명의 대표적 인물인 조선 후기의 문신 정원용(鄭元容)[1783~1873]이 1808년 4월 7일 한양에서부터 오대산 사고를 거쳐 고성군에 이르기까지 25일 동안 다녀온 과정을 기록한 일기이다. 이를 『동정일기』, 『포쇄동정일기』 등이라고도 한다. 『쇄사동정일기』를 줄인 기록이 『경산일록(經山日綠)』에 실려 있다.

[편찬/발간경위]

정원용은 1807년에 예문관 검열(檢閱)에 제수되어 경연(經筵)에 늘 참석하다가, 순조 임금의 명령으로 포쇄(曝曬)[책이나 곡식, 의복 등을 햇빛에 말리거나 바람을 쐬어서 습기를 제거하는 일]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정원용은 열성(列聖) 실록을 포쇄하고 정조의 지장(誌狀)을 봉안하기 위해 1808년 4월 7일에 정조의 지장(誌狀)을 모신 채여(彩輿)를 배종하면서 포쇄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하고, 『쇄사동정일기』를 기록하였다. 권수제 ‘쇄사동정일기(曬史東征日記)’ 밑에 “성상 재위 8년 무진 맹하 초7일 열성 실록을 포쇄하고 정조대왕의 지장을 봉안하기 위하여 강원도 오대산 사고에 갔다”라는 내용이 3행 기록되어 있다.

[형태]

1책 31장의 필사본으로, 가로 26㎝, 세로 21.5㎝이다. 표제는 ‘동정일기(東征日記)’이다.

[구성/내용]

『쇄사동정일기』는 1808년 4월 7일부터 날짜별로 날씨, 그날 지나온 지점, 지나온 거리, 만났던 사람, 일어났던 일 등을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서 기록하였다. 마지막 부분에는 저녁 식사 뒤에 활동한 내용도 기록하였다. 5월 2일 서울로 돌아오며 일기가 끝난다. 일기에는 포쇄하는 과정만이 아니라, 오대산과 금강산을 다녀오면서 구경한 명승지와 만났던 사람들을 상세히 적었다. 첫날 기록과 마지막 기록을 소개해 본다.

1808년 4월 7일. ‘오대산 사고로 가서 실록을 포쇄하라’는 순조의 명을 받고 서울을 떠났다. 관리(館吏) 이응환, 배예(陪隸) 김진수, 청직(廳直) 김종홍, 고직(庫直) 황명득, 가겸(家傔) 최장득, 정귀동 등을 거느리고 떠났다. 경기감사 김재창, 양주목사 송면재는 동문까지 바래다주고, 당제(堂弟) 시용과 윤용, 아우 을운(乙運)은 동문 밖까지 나와 배웅하였다. 평구관(平邱館)까지 와서 점심을 먹고, 안봉관(安奉館)까지 가서 잤다. 광주판관 홍대형, 찰방 조석곤 등이 찾아와 뵈었다.

4월 14일. 실록을 모두 말리고 봉안수소각(奉安修掃閣)으로 돌아와 사고의 문을 봉하였다. 점심을 먹은 뒤 중대를 향해 30리를 가서 금강암(金剛庵)을 둘러보고, 또 20리를 가서 상원사(上元寺)에 도착하였다. 상원사 승려에게서 세조(世祖)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구경하였다. 월정사(月精寺)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잤다.

5월 2일. 오전에 송우점(松隅店)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 소금강(小金剛)을 지나 서울에 왔다.

[의의와 평가]

『쇄사동정일기』는 조선이 실록의 포쇄를 중시하였다는 구체적인 기록이면서, 금강산 유람의 노정을 보여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특별한 여행마다 평소의 일기보다 자세하게 기록한 정원용의 기록 정신이 돋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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