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14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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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墓-亡-姜碩期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인학 |
성격 | 설화|풍수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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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 강석기|소현세자 |
관련지명 | 낙봉 |
모티프 유형 | 명당 파손으로 집안이 망한 비극 |
[정의]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강석기 가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묘터 잘못 써서 망한 강석기」는 광명시의 대표적 인물인 강석기(姜碩期)[1580~1643]의 가묘(家廟)를 지으려고 할 때 묘 터에서 나온 자루를 터뜨리니 붉은 피가 솟아올랐다. 그 후에 소현세자가 사망하고, 민회빈 강씨가 사사되고, 자손들도 죽임을 당하는 등 불길한 사고가 발생했다는 풍수담이다. 묘 터[길지]는 잘 보존해야 하는데, 잘못하여 길지가 파손되어 명당으로서의 기능을 잃게 되면 집안이나 후손이 망한다는 풍수지리담은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채록/수집상황]
2000년 김현룡이 집필하고 건국대학교 출판부에서 발행한 『한국문헌설화』 제6권의 354쪽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인조 때 강석기[소현세자의 장인]가 사망하고[1643년], 그 다음 해 그 집에서 가묘를 지으려고 집 뒤 낙봉(駱峰) 서쪽 기슭의 땅을 파니, 크기가 말[斗]만 하고 속에 액체가 채워진 자루가 나왔다. 칼로 찌르려 하니 말랑말랑하고 미끄러워 칼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가운데를 새끼로 묶어 양쪽이 팽창되게 해 도끼로 찍으니 속에서 붉은 피가 솟아올라 온 집안에 뿌려졌다. 이를 보고 모두 불길한 징조라고 생각했는데, 이듬해 을유년[乙酉年: 1645]에 강공의 사위인 소현세자가 사망했다. 그리고 또 이듬해에 소현세자의 빈(嬪)이었던 강공의 딸이 사사당했고, 강공 부인 신씨와 아들들도 모두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묘터 잘못 써서 망한 강석기」의 주요 모티프는 ‘명당 파손으로 집안이 망한 비극’이다. 묘 터에서 나온 자루를 도끼로 찍으니 붉은 피가 솟아올랐다는 것은 피가 가지는 의미와 상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피는 친자 확인의 중요한 모티프가 되며, 혈통을 상징하기도 하고, 신성한 제물이자 생명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러한 피를 보존하기는커녕 도끼로 자루를 찍어 피가 튀어나오게 한 것은 불길한 징조임에 틀림없다. 만일 피가 든 자루를 그대로 보존했더라면 모르거니와 이것을 훼손한 것은 강석기 집안이 머지않아 화를 입을 것임을 암시하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