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14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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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積善-政丞-鄭元容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최인학 |
성격 | 설화|시은담|인물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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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 정원용|어머니|외삼촌 |
모티프 유형 | 장례비용의 적선|정승으로 보은 |
[정의]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정원용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남에게 적선하고 정승된 정원용」은 광명시의 역사적 인물로 유명한 정원용(鄭元容)[1783~1873]이 전라감사로 있는 외삼촌에게 돈을 빌려 가지고 오는 도중에 몹쓸 병에 걸려 죽은 일곱 식구의 장례를 치러 주었다는 시은담(施恩談)이자, 그 은덕으로 정승이 되었다는 인물담이다. 광명시 학온동에 묘소를 둔 경산 정원용은 72년간 관직생활을 하며 여섯 차례 영의정을 지낸 고매한 인물이다. 그는 늘 검소하게 생활하며 청렴결백했다.
[채록/수집상황]
1980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간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 4-4의 522~535쪽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1981년 2월 21일 박계홍·황인덕 등이 양해준[남, 64]에게서 채록한 것이다.
[내용]
광명시의 역사적 인물 중에 정원용이라는 검소하고 청렴한 관리가 있었다. 그가 아직 관직에 나가기 위해 공부하던 젊은 나이 때의 일이다. 한번은 전라감사로 있는 외삼촌을 만나러 갔다가 귀가하려고 했다. 외삼촌은 정원용이 공부에만 전력을 기울이도록 막대한 돈을 쥐어 보냈다.
돌아오는 도중 어떤 마을에 괴질로 인해 부인의 곡성이 들려왔다. 사정을 살펴보니, “이 동네에 김진사라는 분이 사는데 일곱 식구가 모두 괴질에 걸려 부인만 남고 모두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죽은 시체는 어떻게 했느냐”고 물으니, “보통 병에 죽은 것도 아니고 괴질로 죽었으니 시체를 어떻게 처리해야 옳을지 모르겠습니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돈도 없고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으니 망막할 뿐입니다.”고 하소연하는 것이었다.
이때 정원용은 기가 막힌 노릇이다 하여 자기가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내놓아 장례를 치러 주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외삼촌이 아무 것도 주지 않더냐?”고 물었다. 정원용은 어머니께 도중에 있었던 일을 고백하고 사죄를 빌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어머니는 “이건 죄가 아니다. 남에게 커다란 적선을 하고 은혜를 베풀지 않았느냐. 너는 장래 큰 인물이 될 것이다.” 하고 칭찬을 해주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남에게 적선하고 정승된 정원용」의 주요 모티프는 ‘장례비용의 적선’, ‘정승으로 보은’ 등이다. 적선을 하는 것은 보상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무릇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하늘에 재물을 쌓는 것이다. 설화에서 적선은 중요한 모티프의 하나인데, 예를 들면 「제비원 전설」이 있다.
신라시대 고창이라고 불리는 곳의 주막에 어린 처녀가 봉사하고 있었다. 주막에 들린 사람은 누구나 이구동성으로 이 처녀의 온정과 봉사심에 칭찬이 자자했다. 이 마을에는 부자가 살았는데 어느 날 부자의 아들이 급사했다. 염라대왕은 그 젊은이에게 “제비라는 처녀의 재물이 이곳 창고에 많이 쌓였으니 그 처녀의 은덕으로 젊은이를 재생시켜 줄 테니 가거라.” 하였다. 다시 살아난 젊은이는 제비라는 처녀를 찾아 함께 적선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