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12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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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治葬 |
이칭/별칭 | 치화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만영 |
[정의]
경기도 광명 지역의 상례에서 시신을 매장하고 묘역을 조성하는 절차.
[개설]
치장(治葬)은 시신을 매장하는 절차로써 산역(山役)을 통해 장지를 마련하고, 상두꾼들이 관을 장지까지 운반하며, 매장 후 봉분을 만드는 등 묘역을 조성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를 치화(治華)라고도 한다. 전통적으로 상두꾼은 마을의 성인[장가를 간 남자]이나 상주의 친구들이 맡는 경우가 많았다. 현대에는 화장(火葬)을 하거나 선산을 이용하기보다는 공원묘지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상여를 꾸미는 경우가 대부분 사라졌다.
공원묘지를 이용하는 경우 산역을 전문적으로 맡아 하는 사람들에 의해 묘역이 조성되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그러나 상부상조의 전통이 남아 있는 농촌 마을의 경우 아직도 상여를 꾸며 장지로 이동하고, 마을 사람들에 의해 묘역을 조성하기도 한다. 1999년 광명문화원에서 발간한 『학온동지』를 통해 이와 같은 치장의 풍습을 엿볼 수 있다.
[절차]
1999년에 발행된 『학온동지』의 기록에 의거하여, 1998년 광명시 학온동 논곡로에 거주하던 할머니의 실례를 통해 치장의 절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장삿날이 되면 아침에 상두꾼을 시켜 상엿집에서 상여를 가지고 와서 꾸미게 하고, 일부는 산역을 한다. 상여가 꾸며지면 발인(發靷) 시간에 맞추어 방에 들어가 관을 들고 나오는데, 광명 지역에서는 이때에 쪽박이나 바가지를 깨뜨린다. 관을 상여에 모신 뒤에 발인제를 지낸다. 상여 앞에 제물을 차리고 곡(哭)을 하면서 맏상제를 비롯하여 차례로 삼헌(三獻)·고축(告祝)·곡 등으로 끝낸다. 제물은 상두꾼들과 조객들을 대접하는데 쓴다.
상여를 맨 다음에는 가족들과 세 번 절하고 떠난다. 상여는 선소리꾼에 의해 인도되며, 명정[영정]→공포(功布)[널을 닦는데 쓰이는 천]→혼백(魂帛)→상여→상주→조객의 순서로 묘지까지 간다. 가는 길에 친척집 옆을 지나갈 때에는 노제(路祭)를 지내기도 한다.
상여가 묘지에 도착하면 관을 내려 안치소에 횡대(橫帶)를 깔고 안치한다. 그곳에서 하관할 때까지 조객을 받는다. 하관은 복인(服人)들이 결관바를 풀어서 하며, 이때 관이 놓일 자리인 내광(內壙)에는 백지를 깐다. 하관한 다음에는 석회로 내광을 채우고 명정을 덮은 다음에 홍대를 홀수로 덮는다.
맏상제가 흙을 떠서 세 번 실토(實土)하고, 이어서 복인들이 실토한 뒤에 일꾼들이 마무리를 하고 회를 다지는 작업을 한다. 회 다지기는 보통 ‘달구질’이라고 하며, 세 번 한다. 봉분을 만들면 산신제를 지낸 뒤, 봉분 앞에서 분토제를 지내면 치장의 의례가 끝난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치장은 가장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는 절차로써 전통 상례에서는 집안 및 마을 사람들이 상부상조의 전통으로 모든 일을 담당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현대에는 대부분 기계의 힘을 빌려 산역을 하며, 장례 절차가 간소화되면서 상여를 꾸미는 경우도 보기 힘들어진 상태이다. 광명 지역에서도 『학온동지』에 소개된 1998년의 상례에서는 상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부 농촌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사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