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12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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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經山鄭元容衣帶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생활·민속/생활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덕묵 |
[정의]
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인물인 정원용의 의복·의대·장식품.
[개설]
정원용(鄭元容)[1783~1873]은 1802년(순조 2) 정시문과 을과에 급제한 뒤 순조, 헌종, 철종, 고종에 이르기까지 72년간 조정의 중요한 관직을 두루 거쳐 영의정까지 역임하였다. 의정부와 중추원에서만 33년간 재직하였으며, 1862년(철종 13)에 궤장(机杖)을 하사받았다. 1874년(고종 11)에 문충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정원용이 관직 재직 때 입었던 유품은 1968년 12월 12일에 국가민속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어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경산 정원용 의대는 조복(朝服) 3점, 상(裳) 1점, 후수(後綬) 1점, 패옥(佩玉) 1점, 홀(笏) 2점, 청초의(靑綃衣) 1점, 대례복 1점, 구군복(具軍服) 2점, 전복(戰服) 3점, 제복 1점, 구군복대 2점, 술 4점, 장도 1점, 호패 7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복은 관복의 하나로 왕이나 신하가 천자에 나아갈 때 입는 옷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으며, 다른 말로 ‘금관조복’이라고도 한다. 상이란 제복이나 조복 밑에 받쳐 입는 치마 형태의 옷이다. 후수는 제복이나 조복 등을 입을 때 뒤쪽에 늘어뜨리던 수놓은 천으로, 관리의 등급을 나타냈다. 패옥은 법복이나 조복 및 제복을 입을 때 양옆으로 달았던 옥(玉)으로 중국에서 유래되었다. 홀은 신하들이 왕을 뵐 때 손에 쥐는 물건으로, 왕의 가르침이나 임금에게 올리던 글을 잊지 않으려고 사용하였으나, 후에는 의례용으로 제도화되었다.
청초의는 삶아서 익히지 않은, 푸른색의 명주실로 만든 옷으로 1품에서 9품까지 입었던 제복이다. 대례복은 국가의 중대한 의식 때 착용하였다. 구군복은 조선시대 문관과 무관들이 갖추어 입던 군복이며, 구군복대는 허리띠이다. 전복은 다른 말로 ‘답호’라고 하며, 소매, 무, 앞섶이 없고 뒤 솔기가 허리 아래로 트여 있다. 제복은 왕이 종묘사직 등에 제사 지낼 때 함께 참여한 신하들이 입었던 옷으로 머리에는 양관을 쓰고 청초의를 입었다.
술은 여러 가지 색깔로 물들인 명주실로 노리개에 사용된다. 장도는 몸에 지니는 칼로 남자는 저고리 고름이나 허리띠에 차고, 여자는 치마 속 허리띠에 차거나 노리개에 연결하여 가지고 다녔다. 호패는 호구 파악, 유민 방지 등의 목적으로 조선시대 16세 이상의 남자에게 발급한 것으로, 상아·황양목·배나무·흑각 등으로 만들어져 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