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5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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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貞恩 |
영어음역 | Yi Jeongeun |
이칭/별칭 | 정중(正中),월호(月湖),설창(雪窓),남곡(嵐谷),수천군(秀泉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지석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종친.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정중(正中), 호는 월호(月湖)·설창(雪窓)·남곡(嵐谷). 아버지는 태종의 아들인 익녕군(益寧君) 이치(李示+多)이다.
[활동사항]
이정은(李貞恩)은 일찍이 수천부정(秀川副正)에 봉해졌다가 종친부도정(宗親府都正)을 지낸 뒤 수천군(秀泉君)에 봉해졌다. 인품이 독실하고 돈후하여 스스로 겸손하며, 식견과 도량이 있고, 학문의 이치를 터득하여 일찍부터 김굉필(金宏弼)·남효온(南孝溫) 등 사림파 학자들과 교유하였다. 성종 대에 사림파가 정치적 역량을 높여 가자 이들과 교유를 끊어 사화 때에 화를 면하였고, 이후 바깥출입을 끊고 음률(音律)에 심취하여 스스로 일가를 이루었다고 한다.
[학문과 사상]
학문을 하는 데 이(理)를 우선하고 문(文)을 뒤로 하였으며 시를 지을 때는 격(格)을 먼저하고 글[辭]을 뒤로 하였다고 한다. 남효온과 홍유손(洪裕孫) 등이 존중하였으며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의 고고한 학풍을 토론하며 세상사를 멀리하였으므로 청담파(淸談派)라 일컬어졌다. 계유정난(癸酉靖亂) 후 세상 사람들이 생육신 김시습(金時習)과 사귀기를 두려워하였으나, 그와 남효온·안응세(安應世)·홍유손 등 네 사람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묘소]
묘소는 광명시 소하동에 있으며 석물로는 망주석과 문인석, 상석, 묘표가 있다.